스키 시즌이다. 신나는 음악과 하얀 눈,화려한 스키복.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들뜬 분위기탓에 스키장 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07년 161건이던 스키장 안전사고는 지난해 302건으로 급증했다.

사고는 곧 소송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겨울에 주로 발생하는 스키장 소송은 시간이 훨씬 지난 여름에야 판결 결과가 나와 대부분 무관심 속에 묻힌다. 스키시즌에 판결트렌드를 알아두는 센스가 필요하다. 각종 안전사고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스키어 간 접촉사고 피해자도 책임

뒤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앞에서 가고 있거나 혹은 넘어져 있는 사람과 충돌할 경우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기본적으로 사고를 낸 후행자의 책임을 묻기는 한다. 그러나 △선행하는 스키어가 갑자기 S자턴을 했다든지 △중급자들이 활강하는 코스에서 스키연습을 했다든지 △중간에 갑자기 섰다든지 △초급자가 중급자 코스에서 탔다든지 하는 구체적 사정이 파악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럴 때는 후행자의 책임을 최대 70%까지 경감해주고 있다.

2004년 초급자인 정모씨는 경기도 Y스키장 중급자용 슬로프 초입에서 친구로부터 스키 동작을 배우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때 슬로프를 빠르게 내려오던 김모씨가 그대로 덮쳐 정씨가 사망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사망한 정모씨가 금지된 곳에서 연습한 잘못이 있다"며 김씨의 책임을 30%(배상액 1억7000여만원)로 제한했다.

인천지법은 중간에 갑자기 멈춰선 선행 스키어를 후행자가 들이받은 사건에서 "선행자가 중간에 정지하려면 다른 이용자와의 충돌 등 돌발사태를 대비해 전후좌우를 살펴야 했다"며 후행자의 책임을 30%만 물었다.

◆안전시설 관리소홀 명백해야 스키장 측 일부 책임

지난해 2월 심모군은 강원도 H스키장 상급 슬로프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다 넘어지면서 안전펜스에 부딪쳤다. 이 사고로 심군의 사지가 마비됐다. 심군의 부모는 "슬로프의 눈이 고르지 않았고,안전펜스가 충격을 흡수하지 못했다"며 스키장을 상대로 10억원 정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슬로프면과 안전펜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초급자가 낸 사고의 경우도 스키어의 잘못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다. 춘천지방법원은 2007년 1월 김모씨가 강원도 H스키장 초급자 슬로프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다 넘어져 사망한 사건에서 "김씨가 사고 당일 처음 스노보드를 탄 점을 미뤄 보드 조작 미숙으로 넘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스키장 측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또 초급자인 A씨가 1991년 강원도 Y스키장 중급자용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다가 코스를 이탈해 나무에 부딪쳐 사망한 사건에서도 2심인 서울고법은 "코스선택은 전적으로 스키어들이 자신의 실력 정도에 맞춰야 하는 것인 만큼 스키장은 손해를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스키장 측의 과실이 명백하면 손해를 일부 배상받을 수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06년 12월 조모씨가 강원도 H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인공점프대를 넘다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한 사건에서 "스키장 측이 날씨가 따뜻해지고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인공점프대 가운데 부분이 깊게 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방치했다"며 "원고에게 2억1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스키어 스스로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며 스키장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서울중앙지법도 같은 해 12월 경기도 B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던 중 리프트가 뒤로 미끄러져 다른 리프트와 충돌하면서 이모씨 등 3명이 추락해 다친 사고에서도 스키장에 기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1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법무법인 두레의 김주형 변호사는 "스키장 사고에서는 스키장이나 사고를 낸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며 "일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하고 만약 사고가 났다면 스키장의 안전시설 및 응급처치 등에 문제가 없는지 현장증거를 카메라 등에 담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