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에게 '세계적인 피겨 요정'이란 찬사를 달아준 일등공신은 바로 어머니 박미희씨다. 딸의 천부적인 재능을 미리 간파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링크장 대관비와 어마어마한 레슨비를 대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장을 오갔던 그의 정성 덕택에 오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엄마의 능력이 곧 자녀들의 경쟁력이요,아이들은 엄마하기 나름이란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대다. '알파맘'(아이의 재능을 발굴해 탄탄한 정보력을 토대로 한치 오차없이 계획대로 키우는 엄마 유형),'베타맘'(아이에게 다양한 환경을 제공하고 결정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엄마 유형),'헬리콥터맘'(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일일이 모든 것을 챙겨주는 엄마) 등 엄마 유형과 관련된 신조어들이 이 시대의 엄마상을 대변하고 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량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과년한 골드미스들에게는 어떨까. 아이의 학습능력이나 재능을 발굴하는 것처럼 과연 행복한 결혼에도 '알파맘' '베타맘'이 통할 수 있는 것일까.


커져가는 '맘' 파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골드미스에게도 엄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딸에게 엄마는 평생 친구이고 자매이자 인생의 조언자다. 엄마들은 마흔을 바라보는 딸도 철부지 어린 아이로 보면서 평생 뒷바라지한다. 심지어 결혼을 해 그 딸이 엄마가 되어도 외손자들을 돌봐줘야 하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요즘 대한민국 엄마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평생 엄마의 보살핌 속에 있다 보니 딸들이 커갈수록 엄마를 많이 닮는 것도 당연하다.

결혼 후에도 장모의 파워는 두드러진다. '사위는 백년지손'이라며 버선발로 뛰어나와 사위를 맞이하고,애써 키운 씨암탉을 잡아내오던 예전 장모의 모습은 이미 오래 전 얘기다. 맞벌이 시대에 장모가 외손자들을 봐주고 처가에서 함께 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게다가 처갓집의 경제력까지 받쳐준다면 장모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 장모가 직접 사윗감까지 고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치를 보기보다 사위가 장모를 살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잘나가는 골드미스 딸들은 대부분 일로 바쁘기 때문에 엄마들이 나서서 맞선 상대를 물색하는 경우가 많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는 "사윗감을 고르는 엄마의 기준이 결혼 당사자인 딸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편"이라며 "집안이 좋은 골드미스인 경우 부모의 구미에 맞는 남자를 매칭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33세 이상인 후보자들을 보면 A급 골드미스들은 넘쳐나지만 이들에게 걸맞은 '골드미스터'는 턱없이 부족해 매칭에 애를 먹는다.


또 요즘 엄마들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인 데다,유학파라도 국가별 · 지역별로 대학 순위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정보력도 탄탄하다. 따라서 경제력부터 집안,학력,외모 등 골드미스 엄마들이 원하는 조건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오히려 당사자의 조건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고 한다. 커플매니저 입장에서는 차라리 골드미스 본인과 직접 상담하고 상대를 매칭하는 것이 성사율이 높다. 결혼 후에는 오히려 친정 엄마 쪽에서 이혼을 권유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딸이 결혼생활로 힘들어 하면 "그래도 참고 이해하도록 해보라"고 다독이기보다는 "뭐하러 참고 사니.그냥 이혼해.네가 뭐가 부족하다고…"라며 이혼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마마걸 · 캥거루족이 익숙한 골드미스

경영 컨설턴트 김미영씨(34)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바쁜 아침 출근시간이면 정신없이 준비하고,방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몸만 쏘옥 빠져 나간다. 엄마가 직접 차를 운전해 직장까지 데려다 준다. 늦은 밤 회사에서 돌아와 보면 말끔하게 치워져 있는 방과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 기다리고 있다.

주말에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도우려는 시늉이라도 할라 치면 엄마는 "시집 가면 평생하게 될 텐데 벌써부터 고생할 필요없다"며 손도 못대게 한다. 김씨는 "부모님께서 이렇게 알아서 다 잘해줘서 편하고 좋다"는 반응이다. 그는 "결혼한 친구들은 자유로운 내 모습을 늘 부러워한다"며 "그래도 결혼은 하는 것이 좋겠지만 될 수 있으면 싱글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늦게 하라고 엄마가 조언한다"고 말했다. 결혼 제도 자체가 여자에게 불리한 점이 많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김씨도 "현재로선 빨리 결혼해 남편과 자식을 챙겨야 하는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다"고 동의한다.

로펌 변호사로 일하는 34세 딸을 둔 이미정씨(57)는 "옛날 같으면 시집 안 간 것을 흠으로 여겨 빨리 시집 가라고 강요하겠지만 요즘은 대충 시집 가서 평범하게 지지고 볶고 사느니 차라리 혼자 멋지게 사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히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신있게 사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한다.

골드미스들이여 '못된 딸'이 되라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안정된 주머니 속에서 캥거루족으로 지내는 게 익숙한 싱글 여성들에게는 결혼이 절실하지 않다. 이에 대해 김혜남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저서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통해 '못된 딸이 되라'고 충고한다. 골드미스들 사이에서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여성들을 꽤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을 키우느라 접을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꿈을 대신 이뤄 보상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캥거루 주머니 속을 빠져 나와 배우자를 찾아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 있으려면 엄마가 딸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김혜남 전문의의 조언이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이뤄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마음과 부모에게 의존적인 딸의 성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어떤 엄마가 딸이 평생 혼자 사는 것은 원하겠는가. 단지 내 품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 딸이 '결혼'이 인생의 장애물이 돼 고생스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렇게 표출된 것일 뿐이다.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엄마들은 결혼이 무조건 '행복한 삶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