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A변호사는 2년 전 사법연수원생 시절 모 지방검찰청 산하 지청에서 두 달가량 검찰시보를 지냈다. 그가 맡은 사건 중에는 술취한 손님이 끓는 찌개그릇을 식당 종업원에게 던져 종업원 팔을 살짝 데게 한 건이 있었다.

이 젊은 검찰시보는 피해자의 화상 정도가 미미한 점을 감안해 벌금 50만원을 구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본 담당 부장검사는 그 자리에서 그를 냅다 꾸짖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범죄인데 '솜방망이' 구형을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A변호사는 부장검사의 지시에 따라 수백만원의 벌금형으로 의견을 바꿨다.

이번에는 지청장이 그를 혼냈다. "서민들에게 100만원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모르느냐"는 훈계였다. 결국 피의자에게는 벌금 30만원이 구형됐다. A변호사는 당시 "검찰의 사건처리가 기준없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데 놀랐었다"며 "지난해 '사건처리기준'이 마련됐다지만 요즘도 바뀐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고무줄 구형'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1500여개 범죄유형별로 사건처리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뇌물사범의 경우 수뢰액이 3000만~5000만원이면 징역 5년 이상,5000만~1억원이면 7년 이상,1억원 이상이면 10년 이상을 구형하는 식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사건처리기준 시행으로 달라진 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의 주범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수십억원의 뇌물을 살포하고 수백억원의 조세포탈,배임증재 혐의까지 있었는데도 지난 9월 겨우 징역 4년이 구형됐다. 조세포탈은 연간 1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되는 중죄다. 지난 5월에는 4000만원의 뇌물을 수뢰한 혐의를 받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고작 징역 2년이 구형되기도 했다.

검찰은 그나마 뇌물 수뢰와 강간에 대해서는 사건처리기준을 밝히고 있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정 사건이 기준에 맞게 처리됐는지 알 수도 없는 셈이다. 양형기준을 전면 공개하고 있는 법원과는 상반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8월 취임 이후 '투명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사건처리 기준부터 투명하게 해야 총장의 의지도 투명해 보이지 않을까.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