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으로 아동 성폭행에 대한 검찰의 낡은 수사관행과 법원의 낮은 형량 적용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적장애인 여성들도 성폭행 사건에서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법 적용을 잘못해 지적장애인 여성을 성폭행한 가해자에게 무죄가 선고되는가 하면 법원이 과도하게 정상을 참작해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지적장애인의 피해를 구제해야 할 검찰과 법원이 이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잘못된 기소에 항소도 안해

지적장애인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적장애인 여성은 육체는 성인이지만 지능이 낮아 유인과 범행이 쉽기 때문이다. 여성부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 신고 건수는 2006년 8979건,2007년 9892건,2008년 1만1442건 등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칼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는 엄단해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지능 수준을 가진 정신지체 3급 A모씨(25)는 재활교사인 최모씨(38)로부터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지만 검찰이 기소를 잘못하는 바람에 1심에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다. 최씨는 A씨에게 "재활 작업장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한 뒤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이 최씨에 대해 형법 제302조(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가 아니라 성폭력특별법 제8조(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등)를 적용해 기소했기 때문이다. 성폭력특별법 8조에 따르면 피해 여성의 장애 수준이 심신상실에 이를 정도여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피고인의 형량이 낮아진 사례도 있다. 조모씨(36)는 지난해 공원에서 만난 정신지체장애 2급 B모양(18)을 유인한 뒤 45일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수차례 강간했다. 조씨는 이미 15살의 미성년자와 동거생활을 했던 전력이 있는 데다 미성년자를 유인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과도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는데,검찰은 항소를 하지 않았다. 결국 조씨의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항소할 경우 1심보다 더 높은 형을 구형할 수 없다는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원심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항소심을 맡았던 재판부는 "피고인의 죄질이 매우 나빠 1심 형량이 낮다고 판단됐지만 검사가 항소하지 않아 형량을 높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처벌 원해도 집행유예

법원이 과도하게 피고인의 정상을 양형에 참작하는 사례도 많다. 인천지법은 지난 3월 직업 재활교사인 김모씨(30)가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지체 2급인 C씨(22)를 작업장 화장실에서 위협한 뒤 강간한 사건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씨에게 적용된 성폭력특별법(장애인에 대한 준강간등)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관대한 형량이다. 재판부는 C씨가 합의를 해주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김씨가 법원에 합의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공탁한 점과 초범이라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죄질이 좋지 않은 사건에서 합의도 되지 않았는데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예외적"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지적장애인 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아예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있다. 인천지법은 지난 4월 정신지체 2급인 D양(14)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해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되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고 피고인이 위력을 사용했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적장애인은 자신이 당한 피해를 법정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상대방 변호인의 위압적인 질문에 말을 바꾸는 경우도 있어 증거능력을 의심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지능이 낮고 말을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성폭력 피해가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지적장애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법조계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일반인보다 훨씬 무거운 양형을 적용하는 처벌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