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 도곡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59)는 요즘 강남구 청담동의 한 갱년기 클리닉에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또래보다 작은 키(152㎝) 때문이 아니다.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얼굴주름과 홍조,불면증을 줄여볼 요량에서다. 그는 "나이 쉰에 접어들면서 부쩍 이런 갱년기 증세가 나타나 힘들었는데,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다는 친구들의 권유로 주사를 맞고나서는 증세가 많이 호전됐다"고 말했다.

#2.중소기업 대표인 김기연씨(가명 · 55)는 요즘 이유없이 무기력하고,들은 얘기도 깜빡깜빡하는 등 건망증이 심한 상태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안티에이징 클리닉을 찾아 성장호르몬 치료 권유를 받았다. 김 대표는 "건강검진을 해보니 복부지방 비중이 심하고,근육량도 크게 줄어 있었다"며 "호르몬 치료와 운동요법,식사요법 등을 병행하니 부쩍 개운해진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성장기 근골격계의 형성을 돕는 성장호르몬이 '안티에이징'및 '보디 리모델링'의약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성장호르몬 치료제는 원래 비정상적으로 키가 작은 소아나 어린이 청소년들의 왜소증 치료를 위해 개발된 바이오의약품.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함께 성장호르몬의 다양한 인체내 작용매카니즘과 적응증이 잇달아 밝혀지면서 각종 갱년기 증상 개선을 비롯, 노화지연 비만치료 등에 활용될 정도로 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김성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성장호르몬은 지방대사 활동을 증진시켜 복부지방을 줄여주고 근육자체를 늘려준다"며 "뼈의 경우 골흡수(소실)와 골형성을 동시에 해주기 때문에 인체의 주요 구성 성분이 바뀌는 리모델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선 인공 성장호르몬 제제를 잇따라 시장에 출시하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은 업계 리더격인 LG생명과학을 중심으로 동아제약과 녹십자(한국화이자 제품 독점판매)등 국내 제약사들이 전체시장의 90%가량을 차지,리딩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선 외국제약사들의 국내시장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페링은 지난 10월 조맥톤을 국내에 론칭,왜소증을 앓고 있는 북한아동 돕기에 나서는 등 홍보에 나섰고,사이젠코리아도 같은 달 일본 산도스사의 사이트로핀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고 있는 형국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생명과학.이 회사는 1995년 국내 처음으로 외국산을 대체할 수 있는 소아 왜소증 치료용 성장호르몬 제제인 '유트로핀'을 자체 개발,출시했다. 지난 4월에는 1주일에 한 번만 주사를 맞으면 되는 '1주 제형'소아용 성장호르몬 치료제인'유트로핀 플러스'를 국내에 선보였다. 매일 맞아야 하는 불편함과 주사통증 등 최대 약점이었던 기존 제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2007년엔 1주일에 한 번 맞는 성인용 성장호르몬인 '디클라제'를 내놨다.

동아제약도 1999년에 성장호르몬 치료제인 '그로트로핀-Ⅱ'주사액을 출시했다. 2003년엔 동결건조 제형 성장호르몬제제가 갖고 있는 불편함을 개선한 액상제를 내놨다. 회사 관계자는 "정확한 농도의 주사액이 미리 채워져 공급되기 때문에 환자가 스스로 주사해도 정확한 투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국화이자는 2005년부터 녹십자를 통해 지노트로핀을 국내에 유통시키고 있다. 이 제품은 생체 성장호르몬과 구조가 좀 더 비슷한 '고순도' '고농축' 제품으로 주사 시 통증이 적다는 것이 특징.

투약 보조기구도 진화하고 있다. 머크가 개발한 '이지포드'가 대표적.이 장비는 머크가 판매 중인 성장호르몬 제제인 '싸이젠'을 투약할 수 있는 전용기구로 세계 최초의 전자식 성장호르몬 주사 장비다. 투여용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고,투여시간과 횟수를 기록해주는 데다,주사액에서 공기방울을 빼내는 불편함도 없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에 앞서 화이자도 주사용 펜에 장착해 쓸 수 있는 주사액 카트리지를 개발,내놓았다.

업계에선 성장호르몬 치료제 시장이 현재는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다소 둔화되고 있지만,경기회복세가 본격화 되면 성장호르몬 제제 시장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성장 호르몬 제제 시장은 왜소증 치료는 물론 항노화와 비만치료,갱년기 장애 치료 등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추가 적응증이 계속 연구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은 약 600억원 규모로,연간 10% 안팎 성장하고 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