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 재개발 사업이 '비리의 온상'임이 다시 확인됐다. 조합 간부들은 하청을 원하는 업체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겼고,경찰 공무원 변호사들은 조합과 하청업체를 연결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거나 편의를 봐주며 검은 돈을 받았다.

서울동부지검이 15일 발표한 서울 송파구,경기 성남 등 수도권 8개 재건축 · 재개발 단지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비리가 없는 재건축 · 재개발 사업장은 한 곳도 없었다. 8개 사업장에서 모두 9명이 구속 기소되고,2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조합장 등 조합 임원을 맡으면 아파트 1~2채를 챙긴다는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서울 잠실의 모 재건축 조합장 고씨는 2007년부터 작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모 창호업체 대표 김모씨(50 · 불구속기소)로부터 500억원 규모의 재건축 아파트 창호 공급업체로 선정해 준 대가로 6억원을 받아 챙겼다. 김씨는 창호 공사권을 따내려고 양모씨(38 · 불구속기소) 등 브로커를 이용해 고씨 외에도 조합 간부들에게 14억5000만원을 뿌린 것으로 조사됐다.

구속 기소된 또 다른 잠실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 이모씨(59)는 아파트 청소 등을 담당하는 관리업체 선정에 관여해 업자로부터 3800만원을 받는 등 8800만원을 챙겼다. 모 조합 감사 조모씨(55 · 여)는 브로커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다.

비리를 감시해야 할 경찰 공무원 등도 비리에 가세했다. 잠실 소재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을 구속시킨 전직 경찰 간부 김모씨는 이후 조합장과의 안면 관계를 이용해 억대 돈을 끌어오는 브로커로 활약했다. 김씨는 잠실 송파구 재건축 조합의 단지 내 상가 매각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아 조합장에게 5000만원,조합 고문변호사에게 6500만원을 건네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송파구청 공무원 김씨는 거여동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정비업체에서 17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재건축 · 재개발 사업 전문 브로커의 존재도 확인됐다. 브로커 강모씨(38)는 송파구 3개 단지의 관리업체 선정에 개입해 5억원을 받아 챙겼다. 송파구 잠실 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경우 브로커 양모씨(43)는 하청공사 수주를 원하는 업자들에게 4억2000만원을 받아 상당액을 다른 브로커 김모씨(38)에게 전달했고,그 중 2억원은 다시 다른 브로커 김모(57)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업 단계별로 선이 닿는 브로커를 선별해 조합 관계자에게 전방위 로비를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마치 신종플루처럼 번져 나가는 '브로커 플루' 현상이라 불러도 좋을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검찰은 조합관계자들과 브로커 등이 챙긴 28억여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모두 추징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개발 재건축 비리는 결국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며 "다른 재건축 조합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