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초읽기…勞務 전문가 뜬다
삼성그룹의 한 전자계열사는 요즘 일선 사업장 노무팀 인력을 보충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생산현장 근로자들에게 신망이 두터운 R&D(연구 · 개발)와 경영지원 담당 사무직 직원들을 보강,현장 노무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인사에서 지방 사업장의 부장 여럿을 노무 담당 임원으로 진급시켰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무관리 업무가 늘어날 것에 대비,일찌감치 임원급이 진두지휘하는 노무관리 조직을 현장에 꾸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노무 전문가 어디 없나요?"

전문적인 노무 인력이 전무한 정보기술(IT) 업체 B사는 최근 헤드헌팅 회사에 노무담당자 스카우트를 긴급 의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노무 담당 조직이 탄탄한 곳은 노조가 강성인 자동차 등 일부 업종뿐"이라며 "전문적으로 노무만 담당하는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노무 관련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조치와 함께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 사업장 내에 2개 이상의 노조가 들어서면 일선 사업장의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 지금보다 많은 노무관리 인력이 필요하다는 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항공업체 A사는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아예 노무 담당자를 별도로 뽑기로 했다. 사내 노무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인사와 노무 조직을 분리한 기업들도 있다. LG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최근 인사 조직의 일부였던 노경(勞經 · 노사를 뜻하는 LG식 용어) 담당 팀을 별도의 조직으로 떼어냈다. 노경 담당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조직을 나눴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 방침이 확정되면 노경팀에 추가 인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내 위상 높아진 '노무 빠꿈이'

2~3년 전만 해도 기업 인사 관련 조직에서는 인사 방향을 기획하고 직원들의 고과를 매기는 인사기획 담당자들이 사내 위상도 높고 승진에서도 유리했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상당수 기업들이 노무 담당자들에게 인사기획 인력보다 인사 고과를 더 높게 챙겨주고,승진에서도 특별 배려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인사팀 내에서는 '노른자(인사기획)'와 '흰자(노무)'가 바뀌었다는 뼈있는 농담이 나돈다"고 전했다. 그는 "노무 전문가가 아쉽기는 모두 마찬가지"라며 "대부분 기업이 올 연말 인사에서 이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임직원들을 중용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

각 기업 경영진과 전략기획 파트 직원들도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한층 바빠졌다. 복수노조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 등을 참고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시나리오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LG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요즘 고위 임원들이 참석하는 복수노조 관련 세미나를 자주 갖고 있다"며 "복수노조가 인사 파트뿐 아니라 기업 전체가 관심을 갖는 핫이슈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