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부채 많아 경영 어렵다" A4 6장 유서 발견
차남 구속에 스트레스 극심…두산 가족장 결정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72.현 성지건설 회장)이 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 전 회장이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됨에 따라 회사 경영난으로 압박을 받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이날 오전 7시50분께 성북동 자택 안방 드레스룸 옷장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가정부 김모(63.여)씨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김씨의 비명을 들은 운전기사 김모(45)씨가 박 전 회장의 목에 감긴 넥타이를 끊었으며 뒤따라온 자택 관리업체 직원이 박 전 회장을 업고 나와 승용차에 태웠다.

박 전 회장을 태운 승용차는 오전 8시2분께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으며 의료진이 30여분간 심폐소생을 시도했으나 오전 8시32분께 사망판정을 내렸다.

경찰은 자택 안방 금고에서 박 전 회장의 자필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는 A4용지 6장 분량으로 검은 볼펜으로 누구나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또박또박 쓰여졌으며 작성날짜도 적혀 있었다.

유서의 내용은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당부와 가족과 회사 관계자 등 지인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하는 문장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회장은 유서에서 가족과 지인들을 한명씩 거론하며 글을 남겼으며 특히 최근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둘째 아들 박중원씨에 대해 많은 분량의 글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5시30분께 박 전 회장의 방에서 인기척을 느꼈다는 가정부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박 전 회장의 사망시각을 5시30분에서 7시45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박 전 회장이 인수해 경영한 성지건설이 올해 초부터 상당한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박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은 2005년 두산에서 분가한 이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운영하면서 경기침체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차남 중원씨가 증권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회장은 1996-1998년 두산그룹 회장을 지냈으며, 2005년 동생인 박용성 당시 그룹회장과의 다툼으로 소위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그룹에서 사실상 제명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 겸 회장이 1천700억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며, 이후 1년7개월간 이어진 형제간 법정 다툼은 박 전 회장의 그룹 퇴출과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특사후 경영 복귀로 종결됐다.

박 전 회장은 이후 2008년 중견 건설사인 성지건설을 인수, 경영에 참여하며 재기를 도모해왔다.

두산그룹 초대 회장인 고(故) 박두병 회장의 차남인 박 전 회장은 경기고와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며, 1965년 두산산업에 입사한 이후 동양맥주 사장, 두산상사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두산그룹 회장, ㈜두산 회장을 지냈다.

박 전 회장은 1991년 프로야구 OB베어스 구단주와 1998∼200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역임하고 2004∼2008년에는 대한골프협회 고문을 지내는 등 스포츠계를 비롯한 대외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박 전 회장의 형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등 유족은 박 전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6일 오전 9시며, 고인은 경기도 광주시 탄벌리 선영에 있는 부인 고 최금숙 여사의 옆에 합장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고인이 평소 화장해달라는 말씀을 하기는 했지만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어서 직계 유족의 뜻에 따라 매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윤종석 김승욱 기자 faith@yna.co.krbanana@yna.co.kr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