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분은 ●●동을 다녀오세요. 빈 도시락도 꼭 회수해야 합니다. "

지난 22일 서울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내 임대아파트.양손에 도시락을 받아 든 SK그룹 소속 직원들이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행복도시락)'센터 중구점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한국경제신문 후원으로 열린 이날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에 나선 SK 직원들은 모두 5명.이들은 1시간 남짓한 빠듯한 시간 동안 130개 분량의 도시락이 실린 봉고차를 타고 쉴 새 없이 결식아동이 사는 신당동 황학동 일대의 임대아파트와 좁은 골목길을 오갔다.

SK텔레콤 소속의 이치현씨는 "배달을 나오면 결식아동들이 얼마나 많은지 피부로 느끼게 된다"며 "어린 아이들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도시락을 받아들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동행한 추승현씨도 "자원봉사를 나온 뒤에 소외계층의 현실을 보고 개인적으로 다른 봉사활동에 나서는 직원들도 많다"며 "개인 차원을 넘어 정부나 기업들의 관심과 지원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한경과 함께하는 1기업1나눔] (6) SK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결식아동에 '따뜻한 밥'
◆장애인 · 소외계층 고용해 봉사활동

이날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한 곳은 서울 중구 행복도시락센터.40평 남짓한 센터에서는 오전부터 도시락에 담을 밥과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이날 메뉴는 하이라이스와 김치,떡갈비,달걀찜,오이지 무침.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을 보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반찬국물 등이 새지 않도록 밀폐용기에 담긴 도시락은 매일 610개씩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전달된다. 도시락센터의 지원이 없으면 밥을 굶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집이 상당수다. 서울 을지로의 한 상가주택 옥탑방에 사는 초등학생 중학생 남매도 도시락으로 끼니를 잇는다. 중구 도시락센터 관계자는 "편부 가정의 한 아버지가 배(원양어선)를 타러 가면서 도시락 배달을 요청해왔다"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을 때우고 나머지 식사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2월 문을 연 중구 도시락센터는 SK그룹이 지원하는 행복도시락센터 1호점이다. 이곳은 위생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어샤워(air-shower)실까지 갖췄다. SK는 그동안 임대료와 설비투자비 운영비 등으로 3억원가량을 지원했다. 금전적 지원 외에 매주 3회씩 임직원들을 보내 도시락 배달과 설거지 등의 자원봉사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1식4찬이 기본인 도시락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개당 3500원 안팎.중구청에서도 식자재의 80%,운영비의 20%를 지급해 도시락센터 운영을 돕고 있지만 해마다 결식아동 수가 늘어 운영비가 늘 빠듯하다. 하소희 행복도시락 중구센터 실장은 "SK그룹과 중구청의 지원만으로는 부족해 유료 급식 등 외식사업과 빵집을 운영해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강동구의 한 공기업에서 실시한 도시락과 뷔페 입찰에 참여했다가 떨어졌다"며 "도시락센터가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더 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구센터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17명.대부분 65세가 넘는 고령자이거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다. 이들은 월평균 12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행복도시락센터가 아니었다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다. 중구 센터에서는 한식조리사 자격이나 봉고차 배달을 위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료 급식+일자리 창출' 일석이조

SK가 행복도시락센터 모델을 구상한 것은 2005년.결식아동이나 노인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동시에 소외계층에 일자리를 통한 자립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이래 SK그룹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SK 행복나눔재단의 지원으로 1호 센터인 서울 중구점이 2006년 2월 문을 연 이후 행복도시락센터는 총 29개점으로 늘어났다. 이들 도시락센터가 배달하는 도시락은 하루 평균 총 1만7716개에 이른다.

행복도시락센터는 단순히 결식이웃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거나 65세가 넘는 고령자 등이 대부분이다. 도시락센터 운영을 통해 결식이웃 지원과 함께 소외계층의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최근 문을 연 청주점을 합쳐 총 29곳의 행복도시락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519명에 달한다. 청주점 개설에는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1억원을 기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각의 도시락센터는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돼 있다. 행복도시락센터가 1회성 이벤트형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SK는 비영리법인인 행복나눔재단을 통해 2년간 도시락센터 운영비,임대료,각종 설치비 등을 지원한다. 2년간의 지원이 끝나면 센터별로 수익모델을 만들어 독자생존하도록 하고 있다. 1회성이고 일방적인 지원에 그치는 사회공헌활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SK 관계자는 "행복도시락센터는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이라며 "결식이웃 지원과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 있어 여느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