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입김이 세졌다. 최근 다양한 정책을 통해 관련 부처와 마찰을 빚을 때도 많지만 대체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있는 편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26개 업종의 진입규제 개선 방안이 대표적이다.

사실 참여정부 시절 공정위의 '트레이드 마크'는 상호출자제한-출자총액제한-금융사의 의결권 규제 등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 해소를 겨냥한 규제행정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반기업적 규제들이 완화되면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물가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기업들의 가격담합에 강력한 메스를 대고 진입규제 개선을 통해 공공-민간부문의 독과점 구조를 혁파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정위가 면모를 일신해나가고 있다.

공정위의 이 같은 변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호열 위원장(사진)을 13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 위원장은 "당장은 진입규제 개선을 통한 산업경쟁력 강화가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다만 "상조업이나 다단계 판매와 같은 소비자 관련 업종에 대한 실무적인 업무는 공정위 산하의 한국소비자원에서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진입규제 개선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규제 관련 허가권을 갖고 있는 다른 부처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 위원장은 이에 대해 "공정위의 귀납법적인 업무 방식이 다른 부처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과거에는 각 부처를 통해 규제의 내용과 양상을 파악하는 방식이었지만 요즘은 공정위가 시장에서 어떤 장벽이 있는지 직접 찾아낸다는 것.소비자와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들을 갖고 설득에 나서면 대부분의 부처들이 물러선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다만 안경사나 이 · 미용사 등 특정 자격증 소지자만 사업자등록이 가능한 현행법을 고쳐 자격증 없이도 사업등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진출할 수 있는 법인 규모를 제한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 · 미용사나 안경사와 같은 업종 관계자들은 대형 기업이 시장을 잠식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연매출 규모에서 진출가능 기준을 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또 "카르텔 규제도 경제의 선순환과 소비자 후생 보호를 위해 무척 중요한 업무"라며 "국내외 기업들의 담합행위를 끝까지 색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금처럼 경제여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가격담합은 생활물가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또한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카르텔과 관련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과징금을 받기 전에 국내에서 담합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14일에는 서울 서초동 공정위 사무실에서 지금까지 열린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카르텔 업무설명회'도 열 예정이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금융소비자원 설립과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현재 금융감독원과 소비자원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는 일이며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처 간 업무가 중복되면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