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연명치료중지 지침 발표
식물인간 영양.수분공급은 계속...유가족이 전한 '추정 의사' 인정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환자나 가족의 동의를 얻어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료계의 지침이 확정, 발표됐다.

현재도 환자나 가족이 원할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지침이 공표됨에 따라 앞으로 의료분쟁 등을 우려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관행이 줄어들고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계기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 전문가로 구성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 제정 특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3일 의협회관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본인 결정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지 또는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지침'을 공개했다.

위원회는 말기환자를 의식의 유무와 인공호흡기 등 특수연명치료의 필요성에 따라 1~4단계로 나누고 3~4단계의 환자에만 연명치료 중단 절차를 적용키로 했다.

3~4단계 말기환자는 각종 치료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말기환자와 뇌사자, 임종을 앞둔 환자, 식물인간 일부를 포함한다.

우선 임종환자나 뇌사환자는 가족의 동의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의식이 있는 환자의 경우 미리 사전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다면 환자가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 또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단계에서 치료를 시행하지 않게 된다.

환자가 의사를 미처 밝히지 못했다면 보호자를 통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추정 의사'를 인정키로 했다.

이번 지침은 말기환자 등의 특수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지만, 인위적인 생명단축이나 자살 협조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연명치료는 관(管)을 통한 영양.수분 공급, 산소공급, 욕창 예방, 1차 항생제 투여 같은 일반 연명치료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수혈, 항암제 투여와 같은 고도의 의학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특수연명치료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지침에서 다루는 것은 주로 특수연명치료로 지속적인 식물상태라고 해도 일반적인 연명치료로 생존이 가능한 환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연명치료 중단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연명치료에 대한 권고와 절차 진행을 위해 병원 내에는 윤리위원회를 두어야 하며 담당의사는 가족과 협의해 결정을 수행하게 된다.

이윤성 위원장은 "연명치료 중지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의료에 대한 지원 등 사회경제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지침은 의료계 내 연구와 논의 및 전문가 의견 수렴, 국회 공청회 등을 거쳐 제정됐으며 곧바로 의료계에서 적용된다.

이번 지침은 지난 7월 보건복지가족부 소속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표한 원칙과 달리 세브란스병원의 '김할머니' 사례와 같은 지속적 식물상태도 연명치료의 대상에 포함시켰으며 환자 본인의 사전의사지시서 없이 가족들이 전달한 추정의사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지침은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법적인 강제성이 없으며 일선에서 의료진과 환자측간의 심각한 이견이 있을 경우에도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돼 있지 않다.

이 위원장은 "이번 지침은 환자 측으로부터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 의사가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를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번 지침이 일선에 정착하면 환자들이 품위 있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연명치료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