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년 동안 유예돼 온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금지 조치가 과연 내년부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정부와 재계는 '법대로 시행'을 강조하고 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 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제 결론낼 때가 됐다"는 말로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변수는 노동계의 반발이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29일 "임금지급 금지를 강행하면 대정부투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반발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사문화돼있던 법률을 현실화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다. 취임 초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원칙을 밝혔다가 현실 논리에 막혀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 노동부 장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上) 13년 끌어온 '노사관계 선진화' 정부 의지에 달렸다
사측서 돈 받고 '밥값'은 파업으로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임자는 106명(상급단체 파견자 16명 포함)에 이른다. 노사공동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임시 상근자도 111명에 달한다. 말이 '임시'지 현업에서 빠져 있어 전임자와 마찬가지다. 노조일에만 관여하는 사람이 217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전체 조합원은 4만5800명.조합원 211명당 1명이 전임자다.

이들만이 아니다. 대의원도 484명이다. 이들은 현장으로 출근하지만 사실상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 측의 전언이다. 이들까지 합치면 노조일만 하는 사람이 701명(조합원 65명당 1명)이나 된다. 노조 전임자가 받는 연봉은 평균 6600만원.잔업이나 특근을 하지 않아도 연장근무수당까지 받는다. 대의원까지 합친 임금총액 462억여원은 모두 회사 측이 부담한다. 현대차 조합원들이 내는 조합비(연간 100억여원)의 4배를 넘는다.

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전체 노조 전임자 수는 2008년 말 기준 1만583명에 달한다. 전임자 1명당 평균 조합원 수는 149명.조합원 500~600명당 1명인 일본,800~1000명당 1명인 미국,1500명당 1명인 독일보다 훨씬 많다.

과다한 노조 전임자는 회사의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전임자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할 일을 찾는다. 툭하면 트집을 잡아 노사관계를 뒤흔든다. 파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설립되던 1987년부터 작년까지 1994년 한 해만 제외하고 해마다 파업을 벌였다. 이로 인한 손실액만 11조4654억원에 달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사용자에 손 내미는 노조는 한국뿐

정부는 1997년 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통해 '노동조합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받아서는 안된다'(제24조 2항)고 명시했다. 노동계의 요구였던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대신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조에서 책임지라는 의미였다. 이 법 조항은 13년 동안 사문화되고 있다. 노조의 반대로 세 차례에 걸쳐 시행이 유예돼 온 것.

올해 말로 유예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재계는 내년부터 법대로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대등한 노사관계의 한 주체인 노동자가 다른 주체인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고,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박종남 대한상의 상무는 "외국에선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노조도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 반대의 속내는 '재정난'

현대차 노조원들이 지난해 낸 조합비는 100억원가량이었다. 이 중 44억원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노총으로 들어갔고,56억원으로 살림을 꾸렸다. 현대차 노조 전임자(217명)가 회사에서 받는 임금(143억원)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노조에서 전임자 임금을 부담하려면 조합비를 올리든지,전임자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열린 회원조합 대표자 회의에서 "(전임자 임금 · 복수노조 문제를)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할 수 없고 조직의 사활을 걸 것"이라고 밝힌 건 이런 이유에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획일적으로 법에서 금지하는 것은 집단적 노사자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에서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노사자율에 맡기라는 요구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노동계가 우위에 있는 한국의 노사관계상 전임자 급여를 계속해서 받아낼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조들 요구에는 이런 셈법이 깔려 있는 셈이다. 정부가 거듭된 다짐대로 노조의 '떼법'을 정면돌파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