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올해보다 2.5% 늘어난 291조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예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분야는 복지 부문이다. 복지예산의 증가율은 8.6%로 전체 예산 증가율의 3배가 넘는다.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친(親)서민,중도 강화' 정책기조에 따른 것이다.

다양한 친서민 대책 중 눈에 띄는 것은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도'이다. 일종의 '등록금 후불제'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에 8800억원을 반영했다.

등록금 후불제의 취지는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가는 일"만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자금의 압박에서 벗어나 공부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취지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실제 등록금 후불제는 기존의 학자금 대여제에 비해 혁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대출한도 설정 등으로 학자금 실소요액을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실소요액 전액을 대출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학 중 학자금 상환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평균 8년의 거치기간 중에도 이자납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등 명실상부한 후불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상환기간이 도래하더라도 대출자가 취업이 안 돼 소득이 없다면 대출금 상환을 늦출 수 있다. 원리금 상환 시작을 대출자의 '일정소득' 발생시점에 연계시키고,최장 25년에 걸쳐 상환하게 한다는 것이다. 등록금 후불제는 신(神)의 선물인 듯 보인다. 필요에 따라 대출받고 능력에 따라 상환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후불제는 당연히 재정지원을 필요로 한다. 정부는 대학 재학생 총 197만명의 55%인 107만명이 등록금 후불제를 이용한다는 가정 아래 평균거치기간 8년,대출금 회수율 90%를 전제로 소요재정을 추정했다. 추정 결과 2010부터 5년간 매년 약 1조5000억원의 재정지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과소추정이다. 우선 대출금 회수율을 너무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대졸자의 취업비율을 나타내는 '대졸 고용률'이 2008년 기준으로 75%임을 감안할 때 대출금 회수율은 70% 전후가 될 공산이 크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것도 장애요인이다. 또한 당장의 상환부담 때문에 대출받기를 꺼려 온 학생들이 완전한 후불제인 대출을 마다할 리가 없기 때문에 이용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등록금 후불제는 '구조적'으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 운영의 면면을 보면 이 같은 예측은 명약관화하다. 금융회사가 상대적으로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학자금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현행 학자금 대여제도 아래에서도 '보증기금'은 늘 대손충당금 적립 부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별다른 심사 없이 정부가 직접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경우 어떤 형태로든 매년 천문학적인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등록금 후불제에 대한 호응은 뜨겁다. '당위'로 여겨질 만하다. 그러나 정책실패는 역설적으로 '당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육은 분명한 '의무교육'이 아닌 '선택교육'이다. 선택교육에 국가가 깊이 개입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사회적 배려가 최우선돼야 할 계층에 귀속될 희소한 자원을 형편이 좋은 사람이 향유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국정 지지도 제고 차원이라면 정말 단견(短見)이다.

'선의'로 출발한 것이지만 국가와 대학생을 빚더미에 올려놓게 한다. 그리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뿐이다. 평생교육 강화가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취업률 제고만큼 친시장적 등록금 대책은 없다. 취업률이 낮으니 등록금이 비싸게 느껴진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ㆍ경제학/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