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활성화에 실패한 새 쇼핑몰을 싼값에 장기임대하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출점 행태에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 법원이 구분 소유자의 80% 동의만으로 건물 전체에 대해 임대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약은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통째 임대 반대하는 소수 권리도 보호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최근 부천시 원미구 소재 쇼핑몰 '소풍'의 일부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들이 이 쇼핑몰에서 영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A사를 상대로 낸 '공사중지 및 출입금지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80%의 동의만 있으면 반대하는 수분양자들의 점포까지 전부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집합건물법상의 규약은 구분 소유자의 소유권을 과도하게 침해 내지 제한하는 것으로 무효"라며 "임대동의를 하지 않은 수분양자 점포 부분에 대해 진행하는 공사나 출입행위를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풍에 2001아울렛 킴스클럽 등을 입점시키려던 A사 측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법원의 판단 바뀌어

이 사건에서 원고 측을 대리한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의 최광석 변호사는 "소수 반대자의 임대 거부를 '권리 남용'으로 보던 과거 법원의 판단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지난해까지 죽은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임대결정에 대해 극히 소수가 반대하는 것은 법적으로 잘못이란 판단을 해왔다. 실제 2007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소재 쇼핑몰 팜스퀘어 상가건물의 일부 구분 소유자들은 쇼핑몰이 백화점용으로 통임대되는 것에 반대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그러나 지난 4월9일 대법원이 집합건물법상의 내부 규약이라고 하더라도 배타적 사용권과 관리 권한을 가지는 소유주의 전유부분을 과도하게 침해 내지 제한하는 것은 무효라고 판결한 뒤부터 일선 법원의 판단도 달라지고 있다.

◆유통업체 입점전략 차질 불가피

대형 유통업체들은 그동안 활성화에 실패한 신규 쇼핑몰을 신설점포 출점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곳은 헐값에 장기임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입자를 장기간 구하지 못하거나 장사가 안 돼 손실을 보고 있던 상가 소유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장기임대에 동의해왔다. 반대파의 소송을 막기 위해 다수가 결의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의 점포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약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등에 따라 앞으로는 구분 소유자 전원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게 됐다.

소풍을 재구성하려던 유통업체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A사는 소풍 상가의 1~5층(6만7901㎡ · 2만576평)에 백화점식 고품격 아울렛을 넣어 국내 · 외 유명 브랜드를 연중 50~8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대형 할인매장인 킴스클럽도 입점시킨다는 계획이 제대로 이행될지 미지수다. 반대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층별로 일관된 점포배열이 어렵게 되고 인테리어에도 통일성을 기할 수 없어 고객들에게 큰 불편을 주게 된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