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가 이치방 기니나리마스카(무엇이 가장 신경이 쓰이십니까)?"

"시미가 기니낫테이마스(검버섯이 신경 쓰입니다)."

25일 서울 중구 명동 차앤박 피부과병원.이곳에서 일하는 이은비씨(27)는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일본인들의 전화를 받느라 쉴 틈이 없다. 이씨는 상대방이 고민하고 있는 증상과 세세한 한국 방문 일정,치료 프로그램에 대해 유창한 일본어로 묻고 설명했다. 한국인 남자친구와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라는 일본인 환자의 말에는 적어도 2~3일 전에는 와야 완벽한 피부 상태로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덤으로 공연장 인근의 맛집으로 소문난 한식당까지 알려줬다.

방문하기로 예약한 일본인 환자가 도착하자 이씨는 더 바빠졌다. 의사와 상담할 때는 뉘앙스 하나하나를 따져서 통역했고,환자가 치료받을 때에도 맨투맨으로 따라붙었다. 의사소통 문제로 불편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씨의 직함은 메디컬 코디네이터(MC).병원을 찾는 이들의 상담부터 전 치료 과정에 참여해 일정을 관리해주고 치료법에 대해 설명해주는 직업이다. 최근 의료관광이 본격화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통역까지 담당한다. 이씨는 3년째 차앤박 피부과에서 MC로 일하고 있다.

▼메디컬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 생소합니다.

"코디네이터라는 용어 그대로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진단과 치료에 중점을 두는 진료팀이 세심하게 챙기기 힘든 환자 응대를 담당하는 것이죠.접수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환자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드리는 거예요. 가령 맞선을 보러 가는 분이 계시다면 며칠 전에 와서 어떤 프로그램을 받으면 여드름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를 따져서 일정을 맞춰 드려요. 유학생 환자라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때까지 피부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일정을 짜고요. 얼굴이 불그스름한 상태로 비행기를 타면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렇게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일정을 맞춰 주는 게 가장 큰 임무예요. 최근 의료관광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병원을 찾는 외국인들이 원하는 사항을 정확하게 의료진에게 전하는 역할도 합니다. "

▼MC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7년 대학(백석대학교 일본어과)을 졸업한 뒤 서비스 업종에 관심이 많아 면세점에서 일했는데 뭔가 잘 안 맞았어요. 물건 판매에서 일이 끝나버리는 게 좀 허무했거든요. 제가 아무리 서비스를 잘 해서 가방을 팔았다고 해도 그 손님이 내일 다시 오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다 고객과 좀 더 밀착해서 제 역량을 선보일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는 후배의 권유로 MC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민간 자격증인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따고 이 병원에 입사했죠."

해보니까 어떤가요.

"처음에는 좀 고생했어요. 피부과 치료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터라 일단 오자마자 자비를 들여 우리 피부과에서 하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체험해봤어요. 몇 달치 월급이 날아가기는 했지만 제가 모르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어요? 프로그램을 이용한 뒤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등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해뒀죠.그리고 나서는 환자들과 직접 상담할 때 제 체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 드렸어요. 사람들이 얼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은근히 커요. 얼굴 한 쪽에 잡티나 기미가 있는 분들은 그걸 계속 의식하고 그러면서 자신감도 잃고 성격도 변하죠.눈가의 기미 때문에 병원에 오래 다닌 40대 아주머니는 얼마나 병원에 오래 다니셨는지 차트가 책 한 권 분량이었어요. 기미가 완전히 없어져 병원에 그만 오게 된 그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인사하실 땐 저도 정말 흐뭇했죠.저는 지금 하는 일에 굉장히 만족해요. 서비스업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잖아요. "

의사가 아닌 사람과 상담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환자들은 누구나 본인에게 의사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맞춤 진료를 원해요. 하지만 그러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드니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죠.그래서 사전 상담을 통해 MC들이 환자의 특성이나 세세한 사항들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반적인 시술이나 치료 방법을 설명해줘요. 그렇게 대강의 일정을 조절한 다음 진료를 하면 짧은 시간에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거죠.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미리 진료 방법을 설명해 드리고 나면 의사와는 짧은 시간 안에 적합한 치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다들 좋아합니다. "

외국인들도 많이 오던데요.

"보통 하루에 4~5명 정도 찾아와요. 상담전화는 그보다 훨씬 많고요. 지난 실버 위크 때는 일본인 예약이 밀려서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치료 비용도 싸고 전문화한 한국의 피부 치료를 원하는 일본인들이 많거든요. 한 달에 한두 번씩 꼭 방문하는 단골손님들도 많아요. 외국인들은 특별히 신경 써야 돼요. 큰 돈 들여서 한국에 와 치료받는 것인데 완벽하게 해드려야죠.그냥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 나라 사람들 문화와 관습까지 알아야 돼요. 가령 일본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결혼했느냐' 등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실례거든요. 상담하면서 그런 결례를 범하면 다시는 우리 병원에 오지 않을 테니까 조심해야죠.치료 후에는 관광정보를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도 해야 돼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으시니까요. "

이른바 '진상' 손님도 많을 것 같은데요.


"피부과는 여성들이 많은 곳이잖아요.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터넷 의료 상담 코너에 자신의 성기 노출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전화 상담을 해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성기에 대해 치료를 받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죠.그런 사람들에게는 비뇨기과로 가라고 냉정하게 조언해요. 가끔은 조급한 환자들도 있어요. "

남자 환자도 많은가요.

"병원에 오는 사람들 중 20~30% 정도는 남자예요. 요즘에는 오히려 남자들이 치료에 더 적극적이에요. 본인이 쓰는 화장품을 챙겨와 마무리는 그 제품으로 해 달라는 분들도 있어요.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에는 '미(美)중년' 열풍이 불면서 40대 아저씨들도 많이 와요.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관리받게 하는 사람도 있고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MC라는 직업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좀 더 전문적이고 세심한 의료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수요는 늘어날 게 분명해요. 그리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관광이 활성화되면 MC들에 대한 병원의 수요도 더 늘어나겠죠.10년 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후배들에게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것입니다. "

글=박민제/사진=강은구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