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처음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간부들은 무척 당황했다. 과격한 구호와 몸싸움에 익숙한 그들로서는 박수와 노래만을 부르는 집회 문화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였다. 일부 간부들은 어색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시민들이 함께 모이는 집회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모습은 그동안 민주노총이 얼마나 경직된 노동운동을 펼쳐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고백했다.

노동현장이 노사상생과 실리추구 노선으로 전환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노조의 운동행태는 여전히 구(舊)시대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념투쟁과 정치투쟁에 빠져있다. 현대자동차 노사관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일을 하지 않고 임금을 받는 노조간부가 노조전임자,노사공동위원,대의원 등 660여명에 달한다. 투쟁을 통해 얻은 권력으로 '무(無)노동 · 유(有)임금'구조를 만든 것이다. 작업통제권도 노조에 넘어간 상태여서 한때는 근무시간에 신문을 보거나 담배를 피우는 노조원들도 있었다.

이 회사의 단체협약은 불평등 협약이다. 단체협상 때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이며 경영권 개입 등을 요구,회사 측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수용한 결과다. 실제로 단협에는 신기술 도입 ,공장 이전,기업 양수 · 양도 때는 회사가 노조와 공동 결정하도록 명시됐다. 전환배치와 해외공장 인원 투입 문제에도 노조가 관여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근무시간 중 조합활동,조합사무실 유지비 지원 등도 보장된다. 현장 조합원들의 소조직인 '낮은소리모임'의 김재근 대표는 "현장에 계파를 갖고 있는 활동가들의 권력은 무소불위의 수준"이라며 "이러한 권력이 노동운동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노조에서는 7~8개 계파조직이 서로 주도권싸움을 벌인다. 현대차 노조가 22년 동안 매년 파업을 벌여온 것도 계파 간 선명성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공기업 노조의 권력도 막강하다. 주인이 없는 공기업에선 노조가 '왕'이다. 그러다보니 노조는 직원 채용이나 승진에도 개입하는 등 최고경영자 못지않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석유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가스공사,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은 조합원이 순직,공상 등으로 일을 하지 못할 경우 퇴직과 동시에 배우자나 직계 자녀 1인을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단협에 못박고 있다. 한국전력,인천공항공사는 노조 간부의 인사 때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경영 타도'를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 좌파 노동세력에 멍드는 기업들도 많다. 77일간의 파업을 겪은 쌍용차 사태도 좌파 세력 개입으로 문제가 더욱 꼬였다. 2006년 해고자 복직을 둘러싸고 비롯된 기륭전자의 노사분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3년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다른 산업분야의 노조들이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행태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얼마나 거꾸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2월 화섬연맹에서 탈퇴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노조가 금속산별노조에 가입한 것은 투쟁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경남제약 노조는 2000년대 초 금속노조에 가입해 회사 측을 긴장시켰다. 제약회사 노조는 화학섬유노조나 화학섬유연맹에 가입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인데 금속노조에 가입함으로써 투쟁력을 높여보자는 것이다. 사회복지분야에서도 금속노조에 가입한 노조들이 많다. 성람 철원지사,성경원,동두천시각장애인종합복지관 등의 노조가 금속노조 소속이다.

권혁태 노동부 노사갈등대책과장은 "금속산업과 관련 없는 사업장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산별노조로 보기 어렵다"며 "결국 투쟁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