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나 다툼이 생기면 "법대로 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송으로 가봤자 시간은 시간대로 깨지고,돈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다. 잘못하다간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들끼리 타협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럴 땐 올해 새로 만들어진 '법원조정센터'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법조 경력 15년 이상의 법조인들이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조정을 해준다. 인지값도 정식 소송의 5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조정센터 빠르게 정착

법원조정센터는 지난 4월 서울과 부산에 처음으로 설치됐다. 사적 분쟁을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해결하는 게 도입 목적이다. 남발되고 있는 민사소송을 줄여 과중한 법원의 업무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도 있다.

조정센터는 도입 4개월 만에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법원조정센터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이후 지난달 말까지 법원조정센터에 모두 748건이 접수됐고,이 중 631건이 처리됐다. 조정성공률도 58%에 이른다. 이제는 수천억원대의 대기업 간 분쟁도 조정센터를 찾을 정도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로 3150억원의 돈(이행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한화그룹이 소송 대신 조정을 신청한 것.

서울중앙지법의 김성수 판사는 "사적 분쟁은 대부분 법리 다툼이 아니라 개인 간 금전 다툼이기 때문에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도 대화와 합의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대화 · 의견개진 가능


물론 지금까지 조정제도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재판과정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조정을 시도하거나 처음부터 '조정전담재판부'에 배당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정은 기존 소송 제도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법원조정센터의 조정과 다르다.

조정 주체에도 차이가 있다. 조정센터에선 법관이 직접 조정에 나서지 않고 경력이 15년차 이상인 법조인이 조정을 맡는다. 당사자들은 심리적 부담이 줄어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조정위원을 맡고 있는 김병영 변호사는 "길게는 2시간까지 할애해 쟁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당사자들과 충분히 이야기하는 데다 판결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이 없어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조정은 법원에 접수한 뒤 3개월 안에 대부분 결론이 도출된다. 이에 반해 민사 소송의 경우 첫 재판이 열리는 데만 2~3개월이 걸린다. 조정은 또 소송과 달리 비공개이기 때문에 사적인 문제가 외부에 노출될 염려도 없다.

조정비용은 각자 부담하거나 합의해서 정할 수도 있다. 조정이 성립되면 효력은 정식 재판과 동일하다. 당사자가 자발적인 조정에 이르지 못할 경우 상임조정위원이 강제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조정 성립률 더 높여야

지난해 125만9031건의 민사분쟁 가운데 조정으로 처리된 건수는 5만1958건으로 4.1%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법대로 끝까지 가보자는 국민 감정이 우세하다. 조정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 국민들이 조정의 장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현재 50~60%인 조정성립률을 미국처럼 90%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서울법원조정센터 황덕남 상임조정위원은 "사적인 문제는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발적인 조정 성립을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조정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현재 가끔 대리인만 조정에 내보내는 당사자가 있는데 이들에게 조정 참여를 강제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