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침불구, 일선 항바이러스 처방기피
지정기준에 맞지 않는 거점병원도 적잖아

신종인플루엔자 사망자와 감염자가 늘고 있지만, 일선 의료기관의 환자 관리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일선 의료기관과 보건복지가족부 등에 따르면 정부의 '신종플루 의심환자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침에도 불구, 지역 의료기관들이 모호한 규정과 급여삭감 등 불이익 가능성으로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기피하면서 정부 예상치보다 투약건수가 적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건당국의 신종플루 환자 관리지침이 적용된 지난달 21일 이후 이달 13일까지 항바이러스제 투약 건수는 4만5천578명 분이다.

지난달 말 정부가 비축분 가운데 52만명 분의 항바이러스제를 일선 보건소와 치료거점병원, 거점약국 등에 방출했지만 한달이 다 되도록 소요량이 10분의 1도 쓰지 못한 것이다.

이는 하루 2만건까지 처방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던 정부 예상치에 크게 미달할뿐더러 '선제적 대응'이라는 당초 방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의사들이 처방을 기피하자 병원협회는 지난 16일 치료거점병원장 긴급대책회의에서 "항바이러스제 투약 권고건수보다 처방이 너무 적다"며 임상적 판단이 된다면 적극 투약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일선 의료기관의 의사들이 신종플루 의심환자에 대해 항바이러스제 투약을 기피하는 것은 '3회 이상 항바이러스제 부당 처방 시 처방권을 박탈한다'는 종전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임상적 판단만으로 처방했을 경우 과거처럼 급여삭감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모호한 규정도 문제다.

경기도 지역의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시는 '폐렴 등 중중의 소견을 보이는 급성열성호흡기질 환자로 의사가 판단한 경우는 처방토록 규정돼 있지만, 일반 감기 환자도 폐렴과 발열 증세가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타미플루는 첫 증상 후 40-48시간 이내 투약해야 치료 효과가 최상임에도 불구, 지침은 7일 이내 37.8℃ 이상의 발열이 지속되고 콧물, 코막힘, 인후통, 기침 등 증상이 1개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해 '발열 지속기간'을 얼마로 보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다.

치료거점병원의 상당수가 지정기준에 맞지 않아 의심환자들이 찾아가더라도 발을 돌리기 일쑤인 점도 문제다.

정부는 '폐렴치료가 가능한 병원 중 병원급 이상으로 원내 감염관리 책임자, 중환자실, 내과·소아과 전문의 상주기관'을 거점병원으로 지정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이 적지 않다.

서초구의 경우 치료거점병원으로 지정된 A,B병원 모두 소아과가 없어 만 59개월 이상 소아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 때문에 치료거점병원만 믿고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친 학부모들의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더욱이 치료거점병원에서는 감염수칙을 따르지 않는 의사가 신종플루에 감염되고 대구지역에서는 원내 입원환자가 감염되는 등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 지침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서 "처음에는 고위험군, 입원환자, 폐렴 외에는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지 말라고 했다가 뒤집고, 부당 처방행위를 엄벌하겠다던 태도가 하루아침에 적극 처방하라고 하니 일선 의료기관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할 수 있는 고위험군과 연령의 범위를 너무 기계적으로 해 놓다 보니 투약기준에 조금만 못 미쳐도 처방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일례로 수험준비에 지쳐 있는 고3 수험생 중에는 면역력이 떨어진 학생도 많은데 어떻게 이런저런 규정을 따져 처방을 내릴 수 있겠냐"며 정부와 의료기관 간의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