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심리위원제 활용, 항소심서 무죄 뒤집어

정신지체 장애인을 성추행한 재활작업장 교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결국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전문심리위원 제도까지 활용했다.

13일 서울고법 형사7부(이광범 부장판사)에 따르면 최모씨는 경기도 모 재활작업장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2007년 4월부터 A(여)씨를 인근 공원으로 불러내 자신의 차량에 태운 뒤 "거부하면 일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겁을 주는 수법으로 수차례 성추행했다.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A씨의 지능수준이 초등학생 정도에 불과하고 사물 변별 능력이 미약해 의사표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씨의 파렴치한 행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A씨의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딸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발견한 것.
자초지종을 알게 된 A씨 어머니는 최씨를 고소했고, 검찰은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등의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로서도 최씨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범행이 모두 최씨의 차량 안에서 단둘이 있을 때 벌어져 증인이 없는 데다 A씨는 진술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지체 장애가 심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1심은 "A씨가 같은 얘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 주변 사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달리했다.

재판부는 A씨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초빙해 증인 신문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법원 외부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제도로 2007년 8월부터 시행됐지만 널리 활용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또 검찰측 증인으로 여성단체 관계자까지 불러 장애 여성을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재판부는 심리를 거듭한 끝에 "A씨의 진술이 경찰 수사과정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며 "A씨가 당시 상황을 다소 혼동했다고 해도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며 최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시간이나 장소개념이 희박하고 언어구사력이 부족해 자신의 의사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만큼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데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재판장인 이광범 부장판사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증언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믿어줄 수 있는지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었다"며 "1심의 판단이 달랐던 만큼 다양한 제도를 활용해 정교하고 신중한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