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조선소 현장에서 일해 온 근로자가 생업 뿐 아니라 시인과 전통연(鳶) 기능 보유자로도 활동하며 `3색 인생'을 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우조선 거제 조선소에서 작업대 설치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원(59)씨.
1982년 대우조선에 입사한 그는 다른 작업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대를 설치해 주는 일을 27년간 도맡아 하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 중 10∼1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에게 주어지는 `기정'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김씨는 지난해 정년 퇴임을 맞았지만 대우조선의 정년 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를 미루고 여전히 생산현장에서 뛰고 있다.

오랜 인생 경륜을 바탕으로 후배 근로자들을 다독이는 김씨이지만 그가 1인3역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김씨는 최근 180여 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다.

2004년 `현대 시문학'으로 등단해 2006년에는 창조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씨는 현대시문학 경남지부 회장, 한국 문인협회회원, 거제문인협회 이사 등 문학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4∼5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선박 블록을 오르내리며 작업이 고될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시상을 떠올렸다는 김씨는 자신의 시가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후회와 회한 등을 담은 `반성문'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전통연 만들기 기능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가 경남 통영에서 연 만들기 계승자로 이름난 이양재씨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전통연 만들기를 시작한 지도 올해로 27년째이다.

연에 살대를 붙일 때 각도가 0.01도만 벗어나도 무게중심을 맞출 수 없는 점은 풍부한 경험과 감각이 있어야 건조가 가능한 선박 건조 작업과 비슷하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살면서 잊혀져가는 부분을 돌아보고 의미를 되짚어보려고 시작한 취미 생활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며 "조선소 현장에서 물러나면 어린이들을 위한 연날리기 강좌 등을 열어 전통연 맥 잇기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소 후배들에게는 "쉽고 편한 것만 추가하기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 게 소중하다"며 "선박을 만들기까지 공들이는 노력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한 경험이라는 걸 항상 기억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