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사법시험→성공.' 마흔아홉 오세훈의 인생은 드라마감이다. 서울 삼양동 판자촌에서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까지.1980년대 인기 연속극 '사랑과 야망'의 복사판이라고 할 만하다. 하나만 더해진다면 그의 얘기는 신화가 된다. 대통령.아직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한다는 오세훈 시장을 최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4시간여 동안 만났다. '오세훈 재발견'이 주는 흥미진진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울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로맨틱가이 오세훈.그는 과연 투쟁과 반목이 넘쳐나는 이 나라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심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잘 살펴봐 달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루에 몇개의 일정을 소화하십니까.

"대중 없어요. 20~30분 단위로 일정이 짜이기도 하고 하루에 20개 일정을 소화하기도 합니다. 너무 힘들지만 시민들이 찾으니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일전에 일정이 꼬여서 못 갔더니 현장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오늘 오후엔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휴~"

▼힘든 시장직을 왜 두 번 하려 합니까.

"제가 공약하거나 취임 후 제시한 정책의 대부분은 장기 프로젝트들입니다. 한강르네상스,남산르네상스,도심 활성화 사업 등이 다 그렇습니다. 창의시정 등 시스템의 변화는 이제서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하나를 재개발하는 데도 7~8년이 소요되는데 1000만명이 사는 거대도시 서울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죠."

▼몇 년 전 의원 불출마 선언을 했을 때 신선했습니다. 요즘은 몸을 사린다는 지적도 있어요.

"정치적인 판단으로는 애매모호하게 답변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과거 기사를 뒤져보시면 서울시장 취임하고 1년이 채 안 된 시점부터 저는 시장을 한 번 더한다고 그랬어요. 정치인으로선 빵점짜리 처신이지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보면 진심을 알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동북권 르네상스가 나왔을 때도 민주당에서 선거용이라고 비난하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렇게 썼어요. 하지만 맹세코 그걸 준비한 게 2년이 넘었어요. 조정해야 할 일이 많아서 발표가 미뤄진 것뿐입니다. 그것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는 서남권(구로 · 영등포) 르네상스입니다. 구상은 시장 취임 초기였지만 발표 시점은 취임하고 1년6개월 지나서예요. 내 머릿속에는 임기 초에 이미 서남권과 동북권(도봉 · 강북 · 중랑구) 르네상스가 다 있었어요. 서북권(서대문 · 은평 · 마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를 더 구체화하기는 힘들어졌어요. 지금 발표하면 진짜 선거용이라고 비판할 거 아닙니까. 안양천과 중랑천에 배를 띄우겠다고 한 것도 이미 1년 전에 준비한 것입니다. "

▼서울시의 '대심도 도로 건설'은 경기도의 '수도권 대심도 광역전철 사업(GTX)' 따라하기 아닌가요.

"물론 그런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제시한 대심도 건설 계획과 경기도의 GTX는 '지하'라는 기본 컨셉트만 같아요. 취지나 기능 및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GTX는 경기~서울 간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대심도 도로는 서울시내 교통 혼잡을 줄이자는 데 있습니다. 대심도 도로엔 세금이 투입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민자 유치 방식으로 추진됩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막히지 않는 길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통행료를 내고 지하 대심도 도로를 이용하도록 하는 거지요. 통행료를 많이 내더라도 빠른 대심도 도로를 이용하겠다는 수요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 도로로 승용차가 들어가면 지상엔 상대적으로 승용차가 줄어들지요. 8차로 이상의 지상 도로를 6차로로 줄일 수 있습니다. 여유 공간이 생기는 거지요. 2차로만큼의 보행자 공간을 확보하게 돼요. 여유 공간을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 도로로 사용하는 겁니다. 시뮬레이션 해보니까 492㎞의 여유 도로가 생겨요. 인간 중심형,친환경 교통체계를 확립할 수 있는 겁니다. 경기도와 달라요. "

▼동북권 프로젝트,한강 공공성 프로젝트는 인기용 아닙니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한강 공공성 회복 프로젝트,동북권 프로젝트 모두 아파트 값에 영향을 미칩니다. 불황기에 안 하면 언제 합니까. 불황기가 아닐 때 이런 거 하면 아파트 값을 더 끌어올리게 되잖습니까.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는 겁니다. 내년부터 주택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동북권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싶어도 못해요. 한강변 아파트를 바꾸고 싶어도 못 바꿉니다. 정치적인 눈으로 정책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

▼전임시장이 대통령이 됐죠.비교될텐데.

"취임 초 주변에서 '너의 청계천은 뭐냐'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내세우는 게 창의시정이죠.시민을 어떻게 감동을 시킬지,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무엇을 바꾸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창의시정입니다.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풍부한 경험과 새로운 교육 콘텐츠에서 나옵니다. 교육을 받는데 마지못해 받는 게 아닙니다. 내가 즐겁게 교육을 받으면 생생한 아이디어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시정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자신합니다. 최근 개장한 광화문광장이나 곧 선보일 한강르네상스 등이 모습을 드러내면 더 이상 청계천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광화문광장은 서울의 역사적 · 문화적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국가적인 상징입니다.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개장 일주일 만에 100만명이 찾을 정도였습니다. "

▼서울의 미래비전은 무엇입니까.

"문화와 디자인,스토리와 같은 감성적 요소를 갖춘 도시가 될 때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립니다. 도시도 그만큼 활력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민선 4기에는 서울 600년 수도 역사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을 묶어 내야 합니다. 한강 · 남산 등은 정말 좋은 도심 내 자연자원입니다. 서울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맑고 매력적인 세계 도시'가 될 수 있어요.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는 미래 비전의 하나입니다. 경북궁에서 광화문 숭례문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1축은 최근 개장한 광화문광장으로 확대되면서 국가 상징 가로축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인사동~관철동~명동으로 이어지는 2축은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창경궁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3축은 용산공원과 한강까지 이어지면서 서울의 대규모 녹지축을 형성하고 있지요. "

▼보람이 제일 컸던 정책은 무엇인지요.

"한국경제신문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오세훈 아파트(시프트)'예요. 20년 장기전세 주택이지요. 취임 초에 구상해서 1년6개월 뒤에 첫 분양을 했는데 한마디로 대박이 났어요. 어린 시절에 집주인에게 쫓겨났던 기억이 있어서 전세는 전세인데 내집 같이 한 20년 정도 살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사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남녀 지지율이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여성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체감온도 때문일 것입니다. 남자들은 무덤덤하게 그냥 있는데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잖아요. "

▼외모가 정치에서도 장점이 되나요.

"외모에 대한 선입견은 여러 가지를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왜 예쁜 여자들이 공부를 못할 것 같은 것 말입니다. 저도 남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실하다는 소리를 듣기 어렵거든요.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오늘 신고 온 신발은 동대문에서 2만원을 주고 산 것인데 찢어졌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신으면 비싸 보이나 봅니다. (웃음)"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서울 삼양동에서 살 때 어려웠어요. 그곳은 전형적인 판자촌이었습니다. 연탄가스도 많이 마시고.말이 집이지 집이 아니었어요. 며칠 지나면 판자집 동네 하나가 뚝딱 생기는 수준이었어요.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고요. 화장실도 당연히 재래식이고 상수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창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가난이 콤플렉스라고 생각 안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공부를 잘 해서였던 것 같아요. 항상 반장을 하고 1등을 했거든요. 허약 체질이긴 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에서 4학년까지 폐병을 앓았습니다. 아버지가 단칸방에서 담배를 피우셔서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릴 땐 몰랐어요. 제가 걱정할까봐 어머님은 기관지염에 먹는 약이라고 속이셨는데 커서 우연히 그 약이 폐병 약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

▼고시는 체력전인데.

"고시 공부할 때 키가 181㎝였는데 몸무게는 53㎏밖에 안 됐어요. 주위에서 '고시 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달리기를 권하더군요. 그때부터 아침에 도서관에 가 자리잡고 나서 운동장을 뛰고 다시 집에 와 밥 먹고,도서관에 돌아와 공부하다 오후에는 녹슨 역기를 들곤 했어요. 이렇게 2~3년 규칙적으로 먹고 운동하니 체력이 붙기 시작했어요. 자신감이 생기자 자전거도 타고 수영도 했습니다. "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다는 얘기는 뭡니까.

"의원직을 사퇴하고 난 뒤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뭐 할거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이나 할까'라고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어요. 그게 그 매체의 제목으로 덜컥 뽑혔어요. 해당 협회에서 전화가 왔죠.코치도 대주고 자전거도 대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오세훈이 3종 경기 한다면 홍보가 된다고 본 듯해요. 그런데 이게 벼락치기로는 안 돼요. 급한 마음에 나가서 뛰고 자전거 타고 나름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급히 준비하다 보니 지독한 몸살에 걸렸어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는 '이런 상태로 대회에 나갔다가는 죽는다'고 했어요. 다음 날이 대회인데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안 나가면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할까봐 잠시 참석했다가 기권한다는 작정으로 일단 대회장에 갔어요. 스타트 라인에 서서 사정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그날 따라 기자들이 너무 많이 온 거예요. 그래서 '수영만 하다가 나와야지' 하고 억지로 수영을 끝냈습니다. 수영 다음은 자전거였어요. 또 '자전거 반만 타다 기권하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3개 종목을 완주하게 됐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사람 몰골이 아니예요. (웃음)"

▼사법연수원은 왜 1년 더 다녔나요.

"연수원 졸업 시험을 두 번 봤습니다. 첫 번 졸업 시험 마지막이 민사재판이었는데 전날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토사곽란이 온 거예요. 신혼 때라 집사람이 맛있는 것을 많이 해줬는데 콩비지가 상했던 모양이에요.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시험장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게 제가 자주 언급하는 '콩비지 사건'입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화장실을 100번 정도 갔던 것 같아요.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님은 융통성이 없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어요. 아버님이 다니던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6개월간 월급을 못 가져 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아버님은 다른 곳에 손을 벌리지 않으셨어요. 아버님은 당신이 내성적인 것을 싫어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우리를 외향적으로 키우려고 많이 노력하셨죠.부산에 살 때 동생이랑 저랑 조조할인하는 극장에 가끔 데려 가셨어요. 그럴 때마다 '세훈이,세현이 둘 중 누가 저기(무대) 올라가서 노래할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담력을 쌓게 하려고 했던 거죠.서로 먼저 올라 가려고 했어요. 제가 중학교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웅변반에 가입하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덕분에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도 했습니다. 제 성격은 본질적으로는 내성적이었는데 이런 훈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는 성격으로 바뀐 듯합니다. 어머님은 굉장히 강한 분입니다. 아버님 때문에 생활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죠.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빚을 내 남대문 시장에 가게를 냈죠.냄새 나고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매일 눈이 빨갛도록 일하셨어요. 이런 모습을 늘 봐서인지 제가 철이 빨리 들었어요. "

▼정치는 언제부터 생각했습니까.

"정치는 '오변호사 배변호사'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명세를 탄 뒤에 생각하게 됐어요. 이 프로그램이 대박을 터뜨리자 정치권에서 제안이 오더라고요. 변호사 사업이나 잘 할까 해서 프로그램을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운명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방송하기 전부터 환경단체를 돕기는 했지만 정치는 아니었어요.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법을 좀 고치려고 국회의원을 만나려면 하늘의 별따기인 거예요. 만난다 한들 되는 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졌지요. "

▼국회의원 시절이 악몽이었다면서요.

"남들은 의원이 더 보람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의원이 되고 1년도 안 돼 퇴근할 때마다 사퇴서를 내야겠다고 고민했어요. 의원은 한계가 많아요. 그 당시 야당인 데다 가끔 죽기보다 싫은 국회에서의 전투,또 장외투쟁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동원돼야 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마음이 괴로우면 꽃이 꽃으로 안 보여요. 국회에 꽃밭이 있다는 것을 의원 4년차 때 알았어요. 중도 사퇴를 결심하고 나니 꽃도 보이고 국회도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

정리=김태철 · 이재철/사진=양윤모 기자 eesang69@hankyung.com



● 오세훈 서울시장

출생:1961년 1월4일(양력) 서울

학력:중동중 대일고 고려대 고대대학원 석 · 박사(법학)

경력:사시 26회 16대 국회의원

좌우명:불치이치 무위지치(不治而治 無爲之治-일하지 않는 것처럼 일하고 다스리지 않는 것처럼 다스리라)

존경하는 인물:다산 정약용

종교:천주교

주량:소주 반병

애창곡: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