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학부모 대립, 체온계 등 품귀, 병원 환자 기피

신종플루(H1N1)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3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신종플루 공포'로 전국이 떨고 있다.

28일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7일 현재 전국의 신종플루 감염자수는 경기도 1천245명, 부산 298명, 인천 260명 등 모두 3천705명이며 이 가운데 1천여명이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각급 학교들의 개학 연기와 휴교도 잇따르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현재 전국적으로 휴교와 개학연기 결정을 내린 학교는 각각 19개교와 27개교에 달한다.

◇ 등굣길 발열체크 '어찌 하오리까' = 이미 개학을 한 학교들은 등교하는 학생들의 체온을 측정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체온을 재다 보면 수업일정에 적지 않은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경기도 고양시 풍산초등학교 관계자는 "7명의 교사가 학생 1천600명의 체온을 재다 보면 9시에 시작되는 1교시 수업에 늦을 수 밖에 없다"면서 "몇 개밖에 안 되는 체온계로 많은 학생들의 체온을 재기 때문에 위생상 문제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모 고등학교 관계자도 "매일 아침 2천1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체온을 재는 것은 무리"라면서 "의심환자만 보건교사가 체온을 재고 있다.

도 교육청 지침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고교 3년생 '수능이 뭐길래' =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70여일 앞두고 터진 '신종플루 사태'에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인문계 고교는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아무리 학교에서 예방을 철저히 해도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3학년 학생이 성적 불이익을 우려해 4시간 동안 다른 학생들과 함께 중간고사를 본 사실이 드러나 시교육청이 28일 진상조사에 나섰다.

학교 측은 "학생이 신종플루 확진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성적 불이익을 우려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부탁 때문에 시험을 보도록 허용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학교의 다른 학생들은 "신종플루로 사망자가 3명이나 발생한 마당에 학교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 휴교 둘러싸고 학교-학부모 대립 = 대부분의 학교는 학사일정 등을 고려해 가능하면 휴교를 피하려 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이 먼저"라며 휴교를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 해운대구의 모 고등학교가 그 대표적인 경우. 이 학교는 지난 20일 학생 1명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24일 2명의 추가환자가 나왔으나 휴교를 미루다가 25일 학생 3명이 다시 확진판정을 받자 그제야 휴교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해당 학교의 한 학부모는 "좀더 빨리 휴교에 들어갔으면 신종플루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의 건강보다 입시나 수업이 더 중요하냐"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 손세정제.마스크.체온계 품귀현상 = 신종플루의 확산과 함께 손 세정제와 마스크, 체온계 등도 '귀한 몸'이 됐다.

부산시는 최근 16개 구.군 보건소를 통해 각급 학교에 체온계를 1개씩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광주와 인천 등지에서도 체온계를 확보하지 못해 등굣길 발열체크를 하지 못하는 학교들이 적지 않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는 "체온계를 구입하려고 의료기 상사 등 10여곳에 전화를 걸어봤는데 대부분 동이 났다는 답변만 들었다"면서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손 세정제나 마스크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원에 사는 주부 김모(45)씨는 "아이들 학원과 학교에서 손 세정제와 마스크를 갖고 오라는 통보가 왔는데 구할 수가 없다"면서 "대형할인매장에서는 이미 동이 났고 1주일 뒤에나 들어온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 폐렴예방접종 요구 쇄도 = 일선 병원에는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 외에도 폐렴예방주사를 맞으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모 병원의 경우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지난 21일 이후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환자는 2명에 불과하지만, 폐렴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1일 평균 10여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당초 15명분을 보유하고 있던 이 병원의 폐렴 예방주사액은 이미 동이 난 상태다.

다른 지역의 병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 모 병원 관계자는 "환자를 직접 접촉하는 의사와 약사들도 폐렴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주사액을 수소문하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 신종플루 환자, 병원조차 기피 = 신종플루 환자들은 보건소와 약국, 병원에서조차 '기피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 한 보건소에서는 신종플루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직원이 구급차 운전과 환자 접촉을 꺼려 보건소 여직원이 마스크를 쓰고 직접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부산의 한 개원의(開院醫)는 "신종플루 환자를 진료하다 의료진이 감염되면 최소한 1주일간 휴원해야 하고, 우리 병원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나왔다고 하면 누가 병원을 찾아오겠느냐"면서 "이 때문에 개원의들은 신종플루 환자진료를 기피하고, 환자가 나온 경우 쉬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 경기도의 한 거점약국에서는 신종플루 환자가 방문하면 약사들이 서로 응대를 미루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인천.수원.부산.광주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m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