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현금수송차량 탈취를 시도한 혐의로 공개수배가 내려진 용의자 안모(36)씨가 28일 자수를 선택한 데는 차량용 블랙박스(차량운행영상기록장치)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현금수송차량 내에 설치된 기록장치 화면을 분석해 사고 발생 10여일 전 차량 주변을 살피던 안씨의 인상착의가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27일 공개하자 안씨가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차량에 부착된 각종 센서를 통해 운행 상황을 기록하고, 교통사고 발생 때 당시의 상황을 자동으로 저장ㆍ분석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이용된다.

블랙박스는 애초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 차량에 주로 장착됐으나 최근에는 소방차, 119구급차, 일반 차량 등으로 보편화하면서 교통사고 해결뿐 아니라 범죄 증거 등으로 그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실제 지난 5월 울산에서는 주차 요원의 발등을 지나치는 사고를 낸 30대 운전자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범칙금 부과 처분을 받게 되자 "정상 운행하고 있었다"며 블랙박스에 담긴 동영상 기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또 소방서에서도 출동이나 진행을 방해하는 차량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고자 출동부터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블랙박스를 소방차나 구급차에 설치하고 있다.

블랙박스의 이런 기능이 주목을 받으면서 인천시는 법인택시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블랙박스 장착을 유도하고 있고, 경기도와 서울시도 관련 예산을 배정해 블랙박스 보급을 추진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를 통해 용의자 인상착의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번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며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금수송차량이나 택시 등에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