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수강료 상한선을 일괄 적용하는 방식에 제동을 건 법원의 판결을 고육지책으로 수용, 개별 학원이 수강료를 올릴 길을 열어주기로 해 학원가와 학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23일 시교육청과 학원가에 따르면 현행 학원 수강료 상한제는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인 각 학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한도를 정하는 방식이어서 대부분 학원이 이를 초과하도록 해 범법 행위를 부추기는 등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지난 수년간 학원비가 사실상 동결돼 학원가 불만이 쌓여오던 상황에서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강남의 한 영어학원이 강남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학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교육 시장에 비현실적인 규제를 가해 헌법의 기본원리에 배치된다는 게 법원의 판결 논리다.

교육당국은 항소심과 대법원 결정까지 지켜본다는 방침이지만 어쨌거나 일괄적인 수강료 통제 방식에 손을 대 학원가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학원 수강료 상한제를 어기는 학원가를 단속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올 들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사교육 경감 대책의 핵심 정책수단인 점을 고려하면 교육청이 앞장서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긴다는 비난이 일 것도 불 보듯 뻔해 섣불리 빗장을 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법원 판결과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시교육청이 기존의 일괄조정 방식을 원칙으로 하되 개별 학원이 수강료 인상을 요구할 경우 수강료조정위원회의 전문적인 회계 검토 등을 거쳐 상한선 이상으로 수강료를 올려주도록 하는 절충안을 내놨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교육청은 이런 내용으로 학원 및 과외교습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마련, 이번 주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그러나 `학원비 현실화'를 명목으로 교육청이 마련한 대책 역시 학원가의 현실과 괴리가 커 학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려운데다 자칫 전반적으로 학원비만 올려놓는 결과를 가져와 학부모의 원성을 키울 공산도 크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은 각 지역교육청 수강료조정위원을 11명으로 늘려 학원별로 수강료 인상 요구를 검토하도록 했지만 새 제도가 시행돼 학원의 요청이 쇄도하면 이를 단시간에 처리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사교육 중심지인 강남교육청 관내에만 2천800여 학원이 있는데 이들의 요구를 모두 검토해 학원비를 현실화시키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또 회계 전문가 2명을 조정위원으로 위촉해 학원의 제출 자료를 검토하도록 했지만 시교육청이 명확한 기준을 내놓지 않고 조정위원회의 판단에만 맡기도록 해 학원간 형평성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원장은 "새 제도 역시 학원 숫자를 고려하지 않고 조정위원회에 일임하는 등 비현실적인데다 학부모나 교육당국의 반발을 감안해 섣불리 인상 결정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기존 제도처럼 사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학부모들은 조정위가 한 학원의 수강료 인상을 허용하면 다른 학원도 올려주지 않을 명분이 없는 만큼 전반적인 학원비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조정위원회가 특정 학원은 수강료를 상한선 이상으로 받아도 된다고 허용할 경우 어느 학부모가 그대로 납득하겠느냐"며 "그렇지 않아도 수강료 불법 과다 징수가 횡행하는데 한 학원을 올려주면 주변 다른 학원도 덩달아 올리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상한 이상으로 학원 수강료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전문가가 밀실에서 자료를 검토할 게 아니라 해당 학원의 수입.지출 등 회계를 투명하게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