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이 13년간 특별검사의 수사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치는 곡절 끝에 일단 유죄로 가닥이 잡힌 채 사실상 종착역을 앞두게 됐다.

14일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따른 배임액을 227억원으로 산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유죄 선고로 원심을 뒤집었다.

이 전 회장은 이미 조세포탈 혐의로 집행유예의 `한계선'인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이 확정됐기 때문에 이날 유죄가 추가로 선고됐지만 결과적으론 형량은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재상고 여부에 대해 "재판부의 정확한 판결 취지를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양형 부당을 이유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다.

◇ 13년 공방 삼성사건 = 에버랜드 CB 헐값발행 의혹은 2000년 6월 법학교수들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 3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본격화했다.

1996년 12월 재용씨 등 이 전 회장의 자녀들이 저가에 발행된 에버랜드 CB를 대량 인수하면서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 재용씨가 CB 인수로 에버랜드의 최대주주에 등극하면서 순환출자 구조인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사실상 확보했기 때문에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에 불이 붙었다.

검찰은 3년간 수사를 벌인 끝에 공소시효를 하루 남긴 2003년 12월1일 에버랜드의 전ㆍ현직 사장인 허태학ㆍ박노빈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은 주주배정 방식의 외형을 갖췄던 에버랜드 CB가 사실상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돼 회사에 손해가 났음을 인정했고, 손해액 계산방식에 따라 각각 업무상 배임과 특경가법상 배임죄를 물어 집행유예 판결했다.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특검 수사가 시작됐고, 이 전 회장과 임원진이 불구속 기소됐지만 법원 판결은 달랐다.

에버랜드 CB가 주주배정 방식으로 발행됐다가 대량 실권돼 재용씨 남매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지만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은 아니어서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에버랜드 사건은 특검 수사까지 거친 끝에 이 전 회장을 법정에 세웠지만 결국 무죄로 결론났다.

1999년 2월 삼성SDS의 BW 저가발행 의혹도 에버랜드 사건과 닮은꼴이었다.

재용씨 남매가 BW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대주주가 되는 과정이 문제가 돼 1999년말부터 두 차례 검찰에 고발됐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특검 수사로 다시 도마에 올라 이 전 회장 등에게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1심은 BW가 애초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돼 회사에 손해가 났음을 인정하면서도 손해액이 50억원에는 못미쳐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면소 판결했다.

손해액이 50억원을 넘지 못하면 공소시효가 7년인데 사건 발생 후 8년 만에 기소가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항소심은 삼성SDS BW 사건 역시 회사에는 손해가 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했고 대법원은 BW의 가격을 다시 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 집유 판결 배경은 =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 달리 삼성SDS BW 저가발행의 손해액을 227억원으로 산정,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형량은 정상을 참작해 조세포탈 혐의로 확정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리와 경제 현실 사이에서 재판부의 고심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법원은 삼성SDS BW를 시세보다 낮게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는 인정되지만 "그룹의 총수인 이 전 회장이 (삼성SDS BW 저가발행이) 위법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삼성SDS의 발전에 기여했다"며 양형 참작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가 이날 유죄를 선고했음에도 형량을 유지,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은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그룹의 명예 및 이미지와 이 전 회장의 사회ㆍ경제적 위상을 최대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 남은 절차는 =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SDS BW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함에 따라 특검이 재상고할 가능성은 있다.

특검은 삼성그룹이 경영권 편법 승계를 위해 삼성SDS BW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재용씨 남매 등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1천5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했는데 재판부는 227억원의 손해만 인정, 일부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검은 재판부가 삼성SDS BW의 적정한 행사가격을 1만4천230원으로 보고 BW 헐값 발행으로 삼성SDS가 입은 손해액을 227억원으로 산정한 계산법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재상고할 수 있다.
특검은 그동안 BW의 주당 적정가격을 최소 5만5천원∼1만6천500원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특검은 선고일로부터 7일 안에 상고를 해야 하며, 재상고심은 일반사건과 마찬가지로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 배당되고 소부에서 의견일치가 안 되면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대법원은 BW 계산법을 사실심의 전권사항으로 보고 상고기각할 수도 있고, 법률적으로 다양한 요소를 참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자체적으로 계산법을 내놓을 수도 있다.

조준웅 특검은 "판결문을 보고 배임액 산정 방식이나 집유를 선고한 취지를 명확하게 확인한 뒤 재상고할 수 있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