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몸짱을 찍고 나서 은퇴 후에는 근육을 좀 빼 일반적인 몸짱 정도로 살고 싶어요"
아시아 최고의 '근육맨'도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타는 '약한 남자'였다.

지난달 27일 인도 아우랑가바드에서 열린 제43회 아시아 보디빌딩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스터 아시아'에 선정된 이진호(35.대구시청)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예전엔 시선을 피하려고 한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고 다녔다"는 이진호는 최근 인식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부끄럽다며 "은퇴 후엔 적당히 보기 좋은 근육만 유지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뤄야 할 목표가 있다.

이진호는 "앞으로 4~5년 정도 선수생활을 더 할 생각인데, 그 안에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진호는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유럽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 체형의 중동 선수들을 꺾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사실 서구 선수 중에는 아시아 선수들보다 체격 조건이 좋은 이들이 많기 때문에 근육의 크기가 중요한 심사 기준이 되는 보디빌딩 경기에서 한국인은 불리한 면이 많다.

19년 동안 선수생활을 하며 한국 보디빌딩 미들급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이진호도 이런 한계 앞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는 시절을 보냈다.

이진호는 "예전에는 국제대회에 나가면 계체량 때 외국 선수들의 몸을 보고 먼저 주눅이 들곤 했다.

처음부터 한 수 접고 시합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호는 고심 끝에 2000년부터 본래 주종목인 85㎏급에서 한 체급 내려 80㎏급으로 도전하는 모험을 했다.

하지만 체중을 줄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면서 4년 정도의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이진호는 "너무 욕심이 과해서 앞서가려 했다고 반성했다.

2007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내 페이스를 찾자고 자신을 추스렸다"고 말했다.

마음가짐을 다잡고 나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으려 발버둥칠 게 아니라, 남들이 약한 '틈새'를 찾아 공략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다.

"체형이 좋은 만큼 서구 선수들은 근육의 크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들보다 더 단단하고 세밀하게 발달한 근육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다시 한 번 죽기 살기로 해보자"며 이를 악문 이진호는 올해 월드게임 85㎏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데 이어 '미스터 아시아' 타이틀까지 따내며 한 단계 올라섰다.

물론 세밀함으로 크기를 압도하려면 남들보다 더 강도 높은 다이어트와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1년에 7~9개월씩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는 이진호는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다 보니 나중엔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일정해지더라"며 웃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려면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게 중요했다.

이진호는 선수생활 초기부터 자신을 지도해준 홍영표 현 대한보디빌딩협회 수석부회장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고된 훈련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흔히 보디빌딩이 혼자 열심히 몸을 단련하면 되는 외로운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못지않게 다른 사람과의 교감도 중요한 종목"이라고 덧붙였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정신력이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도 큰 원동력이었다.

어머니는 이진호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밤을 새워 뜨거운 물로 마사지해 주셨다.

9년 전에 결혼했지만, 훈련 기간에는 집에서 나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보지 못한다.

이진호는 "은퇴하고 나서는 그동안 못했던 효도도 하고, 가족에 충실하고 싶다"며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하지만 오는 11월 도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아직 어깨 근육이 취약한 것 같다.

거기에 중점을 두고 훈련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진호의 눈은 아직 '은퇴 후' 보다는 '월드 몸짱'의 꿈에 맞춰져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