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한국의 고가 건물을 사들인 뒤 건물 자체를 팔지 않고 건물 소유 법인의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과세를 피한 외국계 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는 처분은 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런 취지의 판결은 스타타워를 매각한 론스타와 극동빌딩을 매각한 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에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에 이어 세번째여서 부동산 투자를 통한 외국계 자본의 편법탈세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5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영국계 법인 L사는 2002년 국내 부동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우리나라와 이중과세 회피 조약(한ㆍ벨 조세조약)을 맺은 벨기에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자본금을 100% 출자해 국내에 ‘노스게이트’란 회사를 설립한 뒤 750억원을 주고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상선 건물을 사들였다.

벨기에 법인은 2004년 9월 건물 자체를 팔지 않고 노스게이트 주식을 프루덴셜 생명보험에 넘기는 방식으로 현대상선 건물을 매각해 주식 양도차익을 얻었으나 종로세무서는 한ㆍ벨 조세조약에 의거해 법인세와 원천징수불성실가산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한ㆍ벨 조세조약 제13조는 주식양도로 인한 소득은 양도인의 거주지국(벨기에)에서만 과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지방국세청이 “벨기에 법인은 조세회피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며 영국 법인에 모두 104억1000여만원의 법인세를,노스게이트 주식을 인수한 프루덴셜 생명보험에는 법인세와 원천징수불성실가산세 47억6248만원을부과하자 L사와 프루덴셜은 “벨기에 법인은 법적 실체를 갖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홍도 부장판사)는 이에대해 “벨기에 법인들은 형식적 거래 당사자일 뿐 실질적인 거래 주체는 영국법인”이라며 “벨기에 법인은 조세회피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인 만큼 L사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처분은 타당하다”고 밝혔다.재판부는 “조세조약은 이중과세와 조세회피를 방지하고 이를 통해 국제거래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라며 “국가 간 조세조약의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 실질과세 원칙은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프루덴셜 재판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이경구 부장판사)도 같은 논지로 법인세 부과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