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CPA) 합격자들의 '수습 대란'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합격자 규모는 예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회계법인들의 채용 숫자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행 공인회계사법은 CPA 합격자들이 회계법인 · 공인회계사회 · 금융감독원 또는 기업 등에서 1년 이상 회계실무 수습을 거쳐야 회계사 등록이 가능토록 하고 있으며 수습 기관은 합격자 본인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CPA 합격자 규모가 크게 늘어난 2000년대 초반 합격자 중 상당수가 수습 기관을 찾지 못해 금융당국에 집단 반발하는 '수습 대란'이 빚어진 바 있다.

◆우려되는 수급 불균형

3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일회계법인 등 4대 회계법인의 올해 수습 회계사 채용 인원은 작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0~500명 선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전체 합격자(1040명)의 절반에 가까운 504명을 뽑았던 삼일은 올해 150~170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은 2007년에도 전체(830명)의 절반 수준을 채용하는 등 해마다 많은 수습 회계사를 흡수했다.

2007년 210명,지난해 220명가량을 뽑았던 삼정은 올해 채용 규모를 100~120명 선으로 정했다. 매년 170명가량을 뽑아 온 안진도 삼정과 비슷한 수준으로 채용 숫자를 줄일 계획이다. 지난해 100여명을 선발했던 한영은 올해엔 구체적인 규모를 확정 짓지 않았지만 50~100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실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자격증 취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전문직 자격증마저 취업을 보장하지 못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회계법인들이 수습 회계사 채용을 줄이는 것은 '허리띠 졸라매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지난해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체질 개선을 진행해 채용 규모를 줄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삼일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삼정은 KPMG,안진은 딜로이트,한영은 언스트앤영 등 글로벌 회계법인과 각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회계업계에선 경기 불황 탓에 감사 등을 진행한 뒤 받지 못한 미수금이 급증하면서 대형 회계법인들의 경영 여건이 여의치 않아진 것도 채용 규모를 줄이는 요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두고 최근 몇 년 동안 회계사 신규 채용을 크게 늘린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IFRS 등을 대비해 이미 인원을 많이 뽑아놓은 데다 경영 환경도 악화돼 올해 채용 규모를 예년처럼 가져가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수습 대란' 다시 오나

CPA 합격자의 대부분을 흡수해 온 4대 회계법인이 올해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CPA 수습 대란'이 다시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금융위원회에서 공고한 올해 CPA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은 850명이다. 2001년 이후 2007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1000명 이상씩 합격시킨 것을 고려하면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뽑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2차 시험이 예년보다 크게 어려웠던 탓에 최소 선발 예정 인원 수준에서 합격자가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4대 회계법인 채용 규모는 합격자 절반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1990년대 매년 500명 선에 그치던 CPA 최종 합격자 수는 2001년 1014명을 선발하며 두 배가량 급증한 뒤 해마다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원이 갑작스레 급증한 2001년과 2002년엔 각각 250명과 120명가량의 합격자가 수습 기관을 찾지 못하자 집단 반발하며 금융당국에 항의하는 '수습 대란'이 발생했다.

◆대책 마련 나선 금융당국

수습 대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오는 9월 초로 예정된 최종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 등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CPA 합격자들이 일반 기업에서 실무 수습을 거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기업체에서도 회계사를 '곧 나갈 사람'으로 인식하는 탓에 채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결국 회계법인의 채용 규모가 수습 회계사 수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화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 회계사들이 많이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합격자들로선 실무를 배우는 초기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