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에 배달된 돈상자 `익명' 속의 온정

"책인 줄만 알았지, 그렇게 큰돈이 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전남 담양군청 행정과에 근무하는 이돈재(28)씨는 지난 30일 오전 10시20분께 사무실 한쪽에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신자가 `담양군청'이라고만 적힌 토마토 상자를 발견한 이씨는 상자에 적힌 전화번호가 군청 대표전화인 데다 발신처가 광주 동구 충장로 모 서점으로 적혀 있어 무심코 상자를 열어봤다.

상자를 열어본 이씨는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책 대신 돈다발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익명의 `기부', 아름다운 사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담양군은 31일 오전 익명의 기부자가 보낸 돈을 처리하기 위해 기부심사위원회를 열었다.

전날 경찰 입회하에 봉인돼 군청 내 농협 금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돈 상자도 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공개됐다.

A4종이에 큼지막한 글씨로 쓴 편지에는 "골목길에 등불이 되고파! 일찍이 파란신호등처럼, 그러나 적신호가 행동을 막아, 이제야 진행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발신자는 돈을 소방대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글씨는 간결하고 힘이 넘쳤으며, 기부를 위해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군청 행정과 직원과 농협 직원이 함께 돈다발을 일일이 풀고 돈 세는 기계를 이용해 20여분만에 모두 2억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농협 직원은 1만원권이 5천600만원, 5만원권은 1억4천400만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돈다발을 담은 서류봉투에는 숫자로 `1000', `500'이라고 적어 이것이 액수임을 짐작케 했다.

`익명'을 위해 특정 은행 이름이 적힌 끈으로 묶인 돈다발에 찍힌 도장을 검은 사인펜으로 지워 군청 직원들과 취재진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기부심사위원들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인재육성을 위한 기금으로 쓰도록 의결하고 밝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떠났다.

`익명'속에 가려진 한 기부자의 아름다운 사랑은 각박한 세상에 따뜻한 햇살처럼 빛났다.

(담양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minu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