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주인은 일반 장사치와는 다릅니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 화랑을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요. 화랑 주인은 화가,컬렉터와 함께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바퀴같은 존재입니다. "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인 노재순씨의 초대전(30일까지)으로 1977년 서울 인사동에 선화랑을 개업한 이후 총 400회 기획전시회를 연 김창실 대표(사진)는 26일 "21세기는 문화가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되는 시대인 만큼 문화장터인 미술시장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미술품 투자는 개인의 수익뿐만 아니라 국가 문화경쟁력을 증진시키는 요소"라며 "화랑은 작가들이 도약할 수 있도록 길 위에 아스팔트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김 대표가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대 초.당시 부산에서 약국을 운영하다 그림에 빠져 인사동에 들렀는데 이상한 느낌이 왔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인사동 분위기와 '코드'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 느낌이 결국 1977년 인사동에서 화랑을 열게 만들었다.

"당시에 화랑협회에 등록된 화랑이 별로 없었어요. 화랑이라는 게 뭔지를 모를 때니까. 현대화랑(현 갤러리현대)이 있었고,표구하던 동산방이 저보다 1년 정도 전에 화랑 문을 열었던 것 같고 진화랑,미화랑,예화랑,조선화랑 정도였죠."

그는 가나아트갤러리,갤러리 현대,국제갤러리 등 대형 화랑들이 속속 인사동을 떠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에는 1000여㎡ 규모의 4층 신축 건물도 세웠다. 또 2005년에는 서울 소격동에,작년에는 청담동에 각각 지점을 내고 서울대 음대를 나온 피아니스트 출신 외동딸(이명진 선컨템포러리 대표)에게 맡기는 등 사업을 키워나갔다. 그에겐 '인사동 터줏대감'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김 대표는 2003년 상업화랑으로서는 국내 처음 현대미술의 거장 마르크 샤갈전을 열어 관람객 5만명을 불러 모았다. 또 세계적인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2007년) 에밀 안토니 부르델(1990년) 인기 사진작가 매그넘(2005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랄프 깁슨전을 성사시킨 것도 부드러운 '예술경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국내 작가로는 작고작가 최영림을 비롯해 권옥연 김흥수 이종상 장리석 오용길 구자승 황유엽 곽수 이숙자 김병종 김춘옥 황주리씨 등 스타급 화가 300여명의 전시를 열어줘 국내 화단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0년대 초에는 40~50대 유망 작가에게 주는 '선미술상'을 제정하는가 하면 작년에는 경기도 화성에 청년작가 미술레지던스 프로그램(작업실 무료 제공)을 가동시켰다.

그는 전시할 작가 선정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남보다 먼저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만큼 보는 순간 '전율'을 느끼지 못하면 예술성과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다.

"선화랑에서 전시회를 갖고 싶다는 작가들의 전화가 수없이 걸려옵니다. 국내에는 5만여명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람은 1%도 안돼요. 많은 작가 중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것이 마치 펀드매니저가 주식 시장에서 유망 종목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작가의 화풍,인간성,작품에 쏟는 열정,시장성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거든요. "

칠십을 넘겼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화랑에 출근하면서 모든 일을 챙기는 그는 인사동과 함께 한 세월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인사동은 여전히 한국 미술의 1번지이에요. 겉으로는 조잡한 중국산 공예품들이 장악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직은 화가들의 작품 무대입니다. "

김 대표는 최근의 미술시장 분위기에 대해서도 "경제상황에 따라 조정이 다소 지연될 수 있지만 침체가 장기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문화투자 시대가 열리는 만큼 최근 미술시장의 분위기는 앞으로 1~2년 내 호전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