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리수준 아니면 조정명령 불가…학원법은 헌법 배치"

교육당국이 학원 수강료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영업정지 등 행정규제를 할 수 있게 한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조항이 헌법에 배치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장상균 부장판사)는 2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L영어학원이 서울강남교육청을 상대로 낸 영업정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 교육 현실상 사교육은 공교육이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소비자인 국민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공교육 못지않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데 합리적 기준 없이 획일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헌법의 기본 원리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또 "학원 종류, 시설 및 교육 수준, 임대료 등이 수강료에 영향을 주는데 개별 요소를 개량화해 합리적인 수강료 산출 방식을 도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만큼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작동하는 수요ㆍ공급 원칙이라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결정되도록 함이 옳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학원법의 수강료 조정명령 제도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예외적인 경우에만 활용돼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교육 행정권자는 사회 통념에 비춰 용인할 수 없는 폭리적인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쉽게 조정 명령권을 발동할 수 없다"며 "학원법이 허용하는 수강료 게시 및 표시제, 허위표시에 대한 제재 등의 다른 간접 장치로 고액 수강료를 규제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강남교육청이 조정명령을 할 때 시설수준, 임대료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만을 근거로 관내 모든 학원 수강료를 종전 액수에서 4.9%만 인상했고 재판부의 명령에도 적정수강료를 산정한 근거가 된 기초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 당국의 주먹구구식 수강료 산정 방식을 비판했다.

강남교육청은 2007년 학원법에 설치 근거가 있는 수강료조정위원회를 열고 강남 지역 246개 학원의 수강료 인상 수준을 물가 상승률과 같은 4.9%로 제한했다.

그런데 L어학원이 이를 지키지 않고 초등학생은 주 4시간에 35만원, 중학생은 주 4시간20분에 38만원의 수강료를 받자 올해 1월 14일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고 학원 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행정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개별 사건에 대해 판단을 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헌법 취지를 반영한 적극적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판결이 확정되면 사실상 학원료를 규제하는 학원법 조항은 현재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