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밝히면 가입단계서 번번이 '퇴짜'
"과학적 근거없는 차별" 제도 개선 시급

우울증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정신질환이 돼 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대단한 정신병'을 앓은 것처럼 치부됐지만 병원을 찾으면 완치가 가능하고 발병 전 예방도 가능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의 효능과 부작용이 크게 개선되면서 약물치료도 활발해져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의 치료를 통해 정상 복귀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이 접하는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치유가 돼 정상 생활로 돌아가더라도 정신과 치료전력이라는 꼬리표는 늘 따라붙어 다닌다.

특히 누구나 손쉽게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앞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은 높은 장벽을 느껴야 한다.

가벼운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일 때문에 보험 가입 자체를 거절당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보험가입 청약자는 신체적 위험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우울증 치료 병력이 있는 사람들은 심사 기회조차 없이 모집 단계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우울증 안 돼" 가입거부 실태


서울 강동구에 사는 하모(여.33)씨는 지난해 변액보험에 가입하려 이곳 저곳을 알아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6개월간 우울증 치료를 이유로 여러 보험회사에서 가입 자체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씨는 어쩔 수 없이 병력을 속이고 한 보험회사의 변액보험에 가입했지만 이번에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병력을 속이고 가입한 사실이 들통나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김모(34)씨 부부의 처지도 비슷하다.

김씨 아내는 자녀를 낳은 뒤 '산후 우울증'을 2년간 앓은 바 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지난 2007년 모 화재보험에 가입하면서 우울증 병력을 보험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산후 우울증'이 고지 의무가 있는 주요 병력이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이후 우울증이 가입거부 사유가 된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고 보험을 해약해야 할 지 말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사고가 난 뒤에 타지 못할 보험금이라면 아예 지금 그만두는 게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경우다.

우울증 병력 때문에 보험 가입단계에서 주저 앉거나 몰래 회사를 속이고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는 표면 위로만 드러나지 않았지 일상 생활에서는 흔히 벌어지고 일이다.

보험설계사들에게도 정신질환자들의 가입 거부 여부는 고민 대상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정신질환자의 가입거부는 내부적으로 원칙처럼 굳어졌고, 정신질환의 일종인 우울증이 가입거부 대상에 포함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회사의 보험 설계사는 "회사 내부망에 있는 심사 가이드라인에 모든 정신과질환의 현증이나 기왕증(정신분열증, 조울증, 우울증)은 가입불가 대상으로 돼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한 보험대리점 대표인 최모(34)씨도 "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단 한 번이라도 받은 사람은 원칙적으로 보험을 못 들게 돼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 신체를 해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가 그 이유다"라고 말했다.



◇ 차별 현실..개선 대책 시급


보험 업계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보험가입 거부 근거로 상법 732조를 들고 있다.

관련 법은 "15세 미만인 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 계약은 무효로 한다"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앓은 적이 있는 사람들의 보험 가입거부를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누군가 정신질환자 몰래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뒤 해를 끼쳐 보험금을 타내는 보험사기를 막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보험계약 무효 대상인 심신상실자나 심신박약자의 범위가 워낙 불분명하다보니 민간보험사의 보험가입 거부 근거로 악용되는 경우가 끊이질 않았다.

보험사가 정신질환의 경중에 상관없이 단 한번 정신과 진료경력만으로도 보험 가입 면담시 거부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제도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으나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보험사들도 이제는 시대에 맞는 인수지침을 갖고 보험 가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가입 거부를 하려면 과학적인 통계자료가 있어야 한다.

없다면 명백한 차별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손해보험협회 황영률 팀장은 "우울증 환자에게 이뤄지는 차별은 없다"고 전제하면서 "설계사들이 영업 현장에서 경험상의 예단으로 거절을 하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다.

경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채희성 생명보험팀장은 "개별 보험사의 경영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는 어렵겠지만 보험협회측과 협력해 실태 파악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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