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1년부터 의무적으로 도입하게 돼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1년 앞당겨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24일 결정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IFRS에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결정은 대기업과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의 IFRS 도입절차가 이미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들 회사는 어차피 도입해야 한다면 시기를 앞당겨 글로벌 기준에 적합한 회계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IFRS 적용시기를 앞당기는 등 국내 IFRS 도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IFRS는 기업실적을 한눈에 나타내주는 '언어'인 회계기준을 어느 국가에서나 동일하게 표시하고 읽을 수 있도록 통일하기 위해 만든 회계기준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분식회계 사건인 엔론사태 이후 유럽식 모델을 주로 반영하고 있으며 현재 100여개 국가에서 이미 도입해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장사와 금융회사 등이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2011년엔 150여개 국가가 이 기준을 적용해 재무제표를 만들 예정이다.

◆IFRS 도입으로 기업가치 상승

우선 IFRS를 도입하면 기업들의 가치가 크게 높아지게 된다. 보유한 자산가치를 현행 국내 회계기준(K-GAPP)에서 적용하는 기준시가 대신 공정가치(시가)로 평가해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회사협의회는 IFRS 방식으로 자산을 재평가할 경우 상장사들의 토지재평가 차액만 최대 22조원이 넘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분기보고서에 실린 생산설비 현황과 주석에 기재된 토지장부가액 등을 조사한 결과다. 주요 12월 결산법인 264개사의 보유토지 장부가액은 35조1061억원이었지만,이를 재평가할 경우 57조9978억원으로 65.2%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실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작년 말 금융당국에서 국내 기업들의 자산 재평가를 허용,토지나 건물 가격을 시가로 평가한 기업들의 주가가 올 들어 급등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연결재무제표가 기업의 '주 재무제표'로 사용되는 것도 기업의 자산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특히 연결재무제표로 실적을 작성할 때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회사'에 대한 실적을 모두 합치기 때문에 관계사가 많은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애니콜' '파브' 등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유한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자산가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IFRS는 기업이 보유한 브랜드 가치 등 무형자산도 실제 가치로 평가해 자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고려대가 올해 초 공동으로 개발한 방식에 따르면 애니콜의 브랜드 가치는 5조7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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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상승동력으로 작용

이를 통해 국내 증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인다. IFRS 도입효과로 기업들의 자산가치가 크게 높아지면서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잣대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PBR는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이 수치가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돼 있음을 나타낸다.

시가의 60% 선인 기준시가로 산정한 부동산 가치를 시가로 평가하면,시가총액은 변화가 없지만 기업의 자산가치는 크게 올라가게 돼 PBR가 낮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적정 주가를 찾으려는 추가 매수세가 유입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개별 회사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신용도도 높아지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2007년 55개국 가운데 51위에 그쳤던 국내 회계 신인도는 IFRS를 도입하겠다고 확정한 이후 작년엔 39위로 껑충 뛴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 회계기준을 도입하면 외국인 투자자금의 국내 증시 유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동준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올해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사용한 KT&G STX팬오션 풀무원홀딩스 등 6개사의 평균 주가는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아직 IFRS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상승률을 보인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이건산업의 경우 해외사업장의 수익이 연결재무제표 적용 덕분에 올 1분기부터 포괄적 순이익에 반영되면서 주가는 5000원 수준에서 1만5650원대로 3배 이상으로 뛰었다"고 덧붙였다.

◆적용 전 해결해야 할 문제

IFRS 도입 과정에서 일부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 자금이 부족한 코스닥 상장사 등이 난감해하는 상황이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매출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일어나는 데다 외국인투자자도 없는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모든 상장사에 2011년까지 일률적으로 IFRS를 도입하게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특히 경기불황으로 자금 사정도 마뜩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IFRS를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일반 기업의 경우 평균 6억원가량이며,금융회사는 34억원 정도라는 게 회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IFRS를 도입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도입비용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세법과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령은 물론 공시제도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 만큼 이에 대한 손질도 시급한 실정이다.

김영옥 회계기준원 연구원은 "바뀌는 영업권과 감가상각방법 등에 관한 세법을 새로 정리해야 하고 IFRS에 수없이 붙게 되는 주석 등에 대한 양식 문제도 본격 적용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며 "이에 대한 감독규정도 마련해 상장사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현재 IFRS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면 이 기준을 관할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돈을 내야 하는데 이를 뉴스레터 식으로 기업들에 제공하면서 IFRS 도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