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있는 고려대 경영대 4학년 송모씨(25)는 진로를 고민하다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교내 CPA 시험 준비반 '정진초'에 들어가기로 했다. 줄곧 취직만을 생각했던 송씨는 올 상반기 주요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자 구직을 포기하고 전문자격증 도전에 나선 것이다. 최근 CPA 준비반 입실을 위해 따로 시험까지 쳤던 송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140석 규모의 준비반에 사람이 없어 지원하는 대로 입실이 가능했으나 올해는 경쟁률이 치열했다"며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점,어학능력 등 이른바 '고스펙(Spec)'을 갖추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차라리 전문자격증 획득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밝혔다. CPA 시험 합격에는 보통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만 자격증만 따고 나면 전문직 취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게 송씨의 설명이다.

최근 유례 없는 취업난 속에 CPA 등 전문자격증을 취득하려는 대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전문자격증 하나면 높은 학점,어학연수 등 해외경험 및 외국어 능력,봉사활동 등 취업에 유리한 스펙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들이 입사 지원시 CPA 등 전문자격증에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점도 수요가 늘고 있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2002년 1만5460명을 정점으로 2007년 4444명까지 매년 1000~2000명씩 줄어들던 CPA 1차시험 응시자 수는 2008년 6234명,2009년 9102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 위기에 따른 취업대란이 불어닥친 지 2년 만에 응시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CPA 시험을 주관하는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관계자는 "외환위기 사태로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1999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1만7112명이 지원한 적이 있었다"며 "그 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CPA 등 전문자격증에 대한 매력이 조금씩 감소해왔다"고 밝혔다. 1999년은 국내에 CPA 시험이 도입된 1967년 이후 최대 응시자를 기록한 해다. 이 관계자는 "최근 다시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전문자격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한 수요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공인노무사,경영지도사,변리사 등 다른 전문자격 응시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공인노무사 1차 시험 응시자는 2008년 4009명에서 2009년 4945명으로 25% 많아졌다. 경영지도사 및 변리사 1차 시험 응시자 수도 각각 392명에서 495명,2457명에서 2765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관세사,세무사 등 자격증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