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공간의 첫 번째 조건은 일단 전시작품들이 제대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시공간이 다른 공간에 비해 기능적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뜻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이처럼 부각되는 데는 주변의 전시관들이 그렇지 못한 탓이다. 자체 건물의 모양을 내기 위한 장식에 치중한 나머지 이런 원칙이 소홀해진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요즘에는 '근본에 충실'하면서도 건축공간의 예술성을 조화시킨 전시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들어선 '토포하우스(topohaus)'갤러리가 대표적 사례다. 이 전시관은 '근본에 충실한 전시관'으로 꼽힌다. 예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인사동 길과 조계사로 통하는 청석골 사이에 지어졌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어온 듯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전벽돌 외관에 세련되고 정갈한 이미지의 사각형 모양으로 꾸며졌다. 튀지 않은 외관에 내부공간도 '겸손한 구조'로 이뤄졌다. 전시될 그림이나 조각을 비례에 맞춰 나열할 수 있도록 층마다 높이와 넓이가 다르게 설계됐다.

내부벽체와 바닥 등에는 장식을 배제했고,벽체의 높이와 폭도 다양한 변화를 줬다. 따라서 이곳에 전시될 작품은 모양과 크기에 관계없이 수용할 수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공용 계단부분이다. 관람객들에게 건물 자체가 주는 시각적 재미와 리듬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벽체에는 작은 창들이 흩뿌려진 듯한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이들은 햇빛을 끌어들이는 기본 기능에 충실함은 물론 2층 입구 위쪽에 설치된 정사각형 창들과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엔 전시작품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이곳 계단을 오르면서 창과 벽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잠시나마 건축과 인테리어가 주는 색다른 운치도 맛볼 수 있다.

이 공용 계단을 지나 3층에 닿으면 중앙에 시원스런 천창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이곳은 입구의 벽면창과 함께 갤러리 공간 전체의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결정체다. 천창으로 빨려들어온 자연광은 건물 내에 전시작품들을 샅샅이 비춰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건축계의 거장인 르 코르뷔제가 이야기했던 '기적의 상자'가 연상된다.

서울 인사동은 요즘 들어 점점 공간자체가 화려해지면서 사람과 건물이 묻혀가는 듯한 추세다. 이 때문에 건축에서 묻어나는 진지한 아름다움은 찾아보기 힘들고,기억하기 싫은 너절한 장식들만 머리에 남는다는 탄식도 커지고 있다. 토포하우스는 인사동의 이런 이미지를 바꾸는 데 상당한 모티브가 될 것도 같다.


/장순각 한양대 실내환경디자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