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처음으로 교과서 가격이 전면 자율화된다. 획일적으로 규정돼 있던 교과서 판형과 페이지 수 등도 앞으로는 출판사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13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달 17일 재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은 국정도서의 가격은 교과부 장관이 정하도록 했으나 검정 · 인정도서 가격은 발행자가 결정하도록 했다. 정부 기관의 사정을 받지 않고 교과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1948년 첫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가 나온 이래 처음이다. 교과부는 앞서 교과서 가격을 제한적으로 자율화하는 상한제를 도입하는 방안으로 입법예고했으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을 완전 자율화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입법예고했다.

◆"해설서 · 문제집 안 사도 된다"

정부가 교과서 발간을 전면 자율화하기로 한 것은 '선진형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판형과 분량을 자율화함으로써 현재의 교과서보다 밀도 있는 내용과 풍부한 사진 · 도표자료를 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교과서 한 권에 상세한 설명과 다양한 연습문제가 모두 수록된다면 해설서나 문제집을 별도로 사지 않아도 돼 사교육비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교과부의 기대다.

정부가 학교자율화를 통해 교과별 교육시간을 20(일반학교)~50%(자율학교) 범위에서 재량껏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새 교과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늘어난 수업시간만큼 교과서 내용도 늘려야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5000~1만원대로 가격 오를 듯

이처럼 교과서가 두꺼워지고 수록되는 내용이 늘어날 경우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교과부의 판단이다.

서상진 교과서선진화과장은 "선진형 교과서 가격은 현재의 2배에서 최고 10배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 평균 가격은 권당 890원.중 · 고교도 1000~3000원 선으로 비교적 싸다. 서 과장은 그러나 "현재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교과서는 정부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학부모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교과부는 초 · 중등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십권의 교재를 비치해 두고 학생들에게 빌려주는 '교과서 대여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서 과장은 "의무교육 대상이 아닌 고교의 경우 저소득층과 차상위계층,전문계고교 학생들의 교재비는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1학년도 고교 선택과목부터 적용

바뀐 교과서는 2011학년도 고교 선택과목부터 우선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고교 2~3학년 대상으로 운영되는 선택과목은 물리 · 화학 · 윤리 · 세계지리 · 문학 · 일본어 등 총 92개 과목으로 구성돼 있어 다양성이 강조된다. 또 학생 전원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보다 학부모의 가격 부담이 적다는 점이 고려됐다.

교과부는 아울러 2011년부터 고교 1학년을 공통교육과정에서 제외하고 선택과목 위주로 수업을 받게 하는 '미래형 교육과정 개편안'을 적용한다고 발표한 상태다. 이 경우 현재 중2 학생이 고교에 진학할 때부터 선진형 교과서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교과부는 이어 2013학년도 초등 1~2학년 과정에 선진형 교과서를 적용하고 순차적으로 2017학년도까지 전체 교과서를 선진형으로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서 과장은 "좀더 빨리 전 학년에 적용하고 싶지만 2007년에 교과 과정을 개편하면서 5년간 새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출판사들에 공고했기 때문에 초 · 중등학교 과정에 적용하는 시점은 2013학년도부터"라고 설명했다.

◆출판사들 희비 엇갈려

교과서 가격 자율화로 교과서 출판업체들 간에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두산동아 · 천재교육 · 금성출판사 · 교학사 · 지학사 등 대형 업체들은 이익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소규모 영세 교과서업체들은 가격 자율화로 인해 오히려 시장에서 밀려날 공산이 크다. 교학사 관계자는 "출판사의 교재 개발 능력 등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과장은 "음악 전문 출판사 등 소규모이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업체는 살릴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