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모 언론홍보대학원에 입학,광고홍보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방송영상학도 있고,저널리즘학도 있었지만 광고홍보학을 선택한 것은 흥미로울 것 같아서였다. 광고와 홍보는 어떤 이론으로 구성됐으며,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예상대로 처음 3학기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수업에 신이 났다. 그러나 재미는 거기까지였다. 이후에는 졸업을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날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가자.세월이 좀먹는 거 아니잖아…"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 어느 대학의 모델과에서 겸임교수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모델 일과 가르치는 일 등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두 학기를 쉬기로 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시험 압박에서 벗어나 생활하다 보니 여유가 생겨 다시 졸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졸업을 위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영어시험은 일단 패스.학점도 괜찮았다. 그리고 이곳의 언론홍보대학원은 석사 수료를 논문과 시험 중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별 고민 없이 시험을 선택했는데,준비하는 과정 초기부터 난항을 겪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1년을 쉬는 사이 입학 동기들이 학업을 포기하거나 졸업해버려서 자료를 함께 구하고 정보를 공유할 스터디 친구가 없었다. 그래도 졸업한 선배들은 어떻게 시험을 패스했는지 발품을 팔고 잔머리를 동원해 자료를 수집,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졸업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곳이기에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바보되기 십중팔구다.

말로만 듣던 머리에 새집이 생긴다는 현상,시험을 며칠 앞두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시험이라고 다른 일을 제쳐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며칠만 더 견디자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새벽까지 공부하다 졸기를 반복.2시간여 잠속으로 기절했다가 다시 본업인 모델 일에 충실하곤 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에 속하지 않는 나였기에,머리에 쥐가 날듯이 외우고,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드디어 시험날.오늘만 잘 끝내면 당분간은 공부의 '공'자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삼엄한 분위기의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백지에 술술술 써내려가며 느낀 안도의 순간도 잠시.중간중간 집중력을 무너뜨리는 시험관들의 발소리가 등 뒤에서 느껴져 초조하게 남은 시간을 보고 다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집중하며 백지를 채운다.

그때 몇 과목이었더라….다른 건 모두 잘 써내려갔는데 '커뮤니케이션론' 시험문제는 예상하고 준비한 것과 전혀 달랐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푸휴~,나도 모르게 큰 숨몰이를 해버렸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름만 쓴 긴 백지를 조교에게 건냈다. 이를 보고 동그래지는 조교의 눈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주에 계속>

오미란 한국모델협회부회장 i16ke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