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48)은 "1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씩 서울을 다녀오느라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책담당 부서에 몸담고 있는 그의 업무 대부분이 국회나 상급부서와 협의해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정부3청사가 대전으로 내려온 지 올해로 11년째를 맞았지만 중앙으로 집중된 업무구조가 여전해 '비효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의 모 과장은 올해 초 문화재 관련 법안 통과 때문에 2개월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해야 했다.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거의 매일 국회에 상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별도 사무실 둔 대전청사 청장들

과장급 이상 대전청사 간부들은 대부분 사정이 마찬가지다. 예산이나 국회 담당,사업부서 공무원들도 틀리지 않다. 상급기관이나 사업부서 공무원들의 업무 협력 파트너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있어 힘들어도 쫓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예산 협의가 진행되는 7월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퇴근을 준비해야 할 평일 오후에도 서울로 올라가 새벽 1시쯤 파김치가 돼 대전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대전청사에 입주한 8개 외청 기관장들은 더 답답하다. 수시로 열리는 상급기관의 확대간부회의와 업무협의를 위해 서울에 별도 사무실을 두고 1주일의 반절은 서울에 상주할 수밖에 없다. 청사가 왜 대전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기관 홍보를 위해 언론사 간부를 비롯한 기자들과 접촉하려 해도 서울을 오가야 한다.

기관장들이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어 벌어지는 업무공백 문제도 심각하다. 외청 국 · 과장들은 예산철이나 국회가 열리면 대부분 자리를 비운다. 연일 서울행에 업무는 마비 상태다.

대전청사의 한 간부공무원은 "청와대나 국회가 내려오지 않는 한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며 "행정도시도 대전청사의 재판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대면 문화나 권위주의의 잔존 등으로 인해 여전히 중앙으로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게 대전 공무원들의 하소연이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서울을 밥먹듯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전 속의 외딴 섬'

대전청사에는 현재 관세 · 조달 · 병무 · 산림 · 중기 · 특허 · 통계 · 문화재청 등 8개 청과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기록원,청사관리소,감사원 대전사무소가 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도 입주해 있다. 근무인원은 6800여명(공무원 4948명)으로 1998년(공무원 4109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대전시 조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대전으로 가족 모두 이주한 공무원은 65.8%,혼자 이사한 공무원은 29.5%다. 이들은 서울 출장 과다 등 업무 불편 이 외에도 하나같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 부족(25.1%),교육기회 부족(18.4%),여가 · 오락공간 부족(13.4%) 등 생활여건의 열악함을 호소하고 있다.

자녀 교육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는 숙제다. 중 · 고등학교까지 교육환경은 서울에 못지 않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무렵이 되면 지역에서 마땅한 대학을 찾지 못하고 자녀들을 다시 서울로 올려보내야 한다.

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정부청사 인근 지역의 교육열과 환경은 서울에 비해 손색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자녀들의 향후 직장과 배경을 고려하면 서울로 진학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들의 특성상 중앙부처의 집행기관 역할에 머물다 보니 대전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파급효과도 작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대전청사는 종종 '대전 속의 외딴 섬'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서구 둔산동 김용석씨는 "정부청사 주변 상권이 발전한 것 말고 특별히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근무직원의 정착률은 해마다 높아져 올해 80~90%로 추정되고 있지만,퇴직 후에는 다시 수도권으로 재이주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재이주를 하겠다는 주된 이유는 가족과의 관계,교육환경 불량,생활 · 문화 · 쇼핑여건의 불편 등을 꼽았다. 정주여건이 서울 및 수도권에 비해 여전히 열악하다는 얘기다.

◆유관단체들도 외면…경제효과 미미

수도권 경제력 집중이 여전하다 보니 대전청사 이전에 따른 경제유발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초창기에는 대전청사가 이전해 오면 유관 단체들이 줄줄이 따라 내려 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민원인들과 접촉이 가장 많은 특허청과 조달청의 경우 변리사 사무실이나 조달업체들이 잇따라 대전에 둥지를 틀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현재 변리사 등록인원 4000여명 가운데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원은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조달청 역시 공공입찰과 관련된 2만여 협력업체의 상당수가 대전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2002년 전자입찰 도입으로 현재는 이전해 왔던 몇몇 업체마저 철수한 상태다.

특허청의 한 공무원은 "특허청 고객인 공장과 기업들이 대부분 서울 인천에 모여있어 모든 일은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특허청도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특허청이 대전에 있다 보니 민원인과 변리사들이 오르내리느라 골탕을 먹고 있는 셈"이라며 "행정수도도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대전의 경제단체 관계자도 "청사 직원 유입으로 상권 확대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며 "대전청사 이전으로 인쇄업 등 일부 업종은 호황을 예측했지만 실제로 지역에 위치하면서도 큰 사업들은 중앙 소재 기업에 맡기고 자잘한 일만 지방기업을 활용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