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개혁은 우리 정부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부터 공기업 민영화와 공공기관 개혁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추진해 왔으나 결국 '용두사미'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과 한국경제신문은 2일 경제위기 대응패널 월례토론회를 갖고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선진화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이 기관 간 통 · 폐합 및 기능 조정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영화를 전제로 하지 않은 공공기관 개혁으로는 당초 목표했던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후생 증대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만경영 근본 해결책은 민영화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공기업 정책의 현주소와 개선방향' 주제발표에서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는 민영화에 대한 계획이 사실상 한 건도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150개 기관의 민영화 계획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이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기업이거나 모기관에 흡수되는 기관으로 실질적인 민영화가 이뤄지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인원 감축이나 경비 절감 등 기업 내부적인 경영 효율화 방안으로는 공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기업의 경영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독점적 지위 △공익이라는 모호한 목표 추구 △불분명한 책임 소재 등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인데 이는 민영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전기,가스,철도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을 포함하는 방안으로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이 확대돼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만 시장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와 효율성 제고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문화,방송,스포츠,관광 등 미래성장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분야에 공공기관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며 "이들 기관의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공기업 민영화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지배주주가 되는 '주인 있는 민영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배주주가 없는 형태로 민영화가 될 경우 공기업의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수 있고 외국기업에 의한 적대적 인수 · 합병에도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인원 감축 위주로는 한계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원 감축 위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노동문제' 주제발표에서 "인원 감축은 구조조정의 목표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며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으로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진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까지 정원을 10% 줄이라는 식의 획일적 가이드라인은 공기업 종사자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뿐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관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조직이 더 유리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조직과 인원을 없애 가면서 효율성을 높여온 조직이 추가로 인원을 감축하려면 상당한 무리가 뒤따르는 반면 그간 방만하게 운영돼 온 조직은 어렵지 않게 인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대해서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 줘야 국가 차원의 연구 · 개발 활동이 위축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패한 연구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예산 낭비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라며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에 대해서는 고용 안정성과 연구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CEO 권한 확대 필요

패널 간 토론에서는 공기업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은 공기업 경영자의 자율성이 확대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공기업 경영자는 예산이나 임금 등에 관한 사항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데다 대부분 단임제라서 좋은 성과를 올려야 할 유인도 적다"며 "공기업 경영자가 노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경제연구원장)는 "공기업 개혁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는 의심하지 않는다"며 "다만 지난 1년반 동안 촛불시위 등으로 사회 갈등이 증폭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해져 공기업 개혁에 필요한 정치적 동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가 어려운 이유로 공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 일부가 사회복지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을 꼽았다. 홍 교수는 "철도가 공기업 체제로 운영되면 채산성이 없는 오지에도 기차가 다니겠지만 민영화 체제에서는 그렇게 못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일반 국민도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