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유예' 시한 넘겨] 막판까지 기다렸는데…'눈물의 해고' 시작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식음료용 포장제 제조업체인 A사는 지난 26일 6명의 비정규직 사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 회사 대표 김모씨는 6월 중순부터 '혹시라도 비정규직 사용기한이 유예된다는 소식이 들려올까'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이들의 성실성과 업무 숙련도가 사내 최고 수준이어서 가급적 붙잡고 싶었지만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늘어나는 적자 때문에 임금 체불을 걱정해야 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정규직을 늘리기는 무리였다.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1인당 월 인건비가 25만원씩 증가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게 김씨의 솔직한 심경이다.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7월부터 비정규직이 쏟아진다고 해서 '하루라도 일찍 놔줘야 다른 직장을 쉽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내보냈다"며 "결국 정치권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못 내놓고 7월을 맞게 된 것을 보니 차라리 잘한 결정이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공방으로 비정규직법 개정 처리가 늦어지면서 비정규직 7월 해고(계약해지) 대란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당장 7월 초부터 사용기한 2년을 맞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계약 해지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는 사용기간 초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월 평균 8만명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노동계는 월 평균 4만여명 선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가 분석한 최근 2년간 정규직 전환율 14.4%를 감안해도 최소 3만5000~7만명가량은 해고될 수 있다는 얘기다. 비정규직의 해고대란은 공기업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는 30일 기간제 직원(비정규직) 31명에게 고용계약 종료를 알렸다.

주공 관계자는 "토공과 통합공사를 10월1일 출범해야 하는 터라 정규직 직원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판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며 "안타깝지만 결국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들을 내보냈다고 끝이 아니다. 주공은 현재 500여명의 비정규직이 있으며 올해 안에 계약기간 2년이 채워지는 직원은 300명에 이른다.

이들 역시 감원 대상이다.

한국방송공사(KBS)는 최근 18명의 계약직 사원에게 계약 해지를 알렸다. KBS는 이들 외에 71명의 계약직 사원들도 사용기한 2년이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계약 해지에 들어갈 방침이다. 농협유통부문(하나로마트)은 약 40명을 해지키로 했다.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갑자기 해지 사실을 알리기가 난처하다"며 "하지만 법이 사용기한을 정하고 있는 이상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기업에서 시작된 비정규직 해고대란은 민간기업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경기지방노동청 관계자는 "6월 중순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사용기한이 유예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대부분 기업이 계약 해지를 유보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7월이 임박해지자 하나,둘씩 계약 해지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특히 비정규직이 몰려있는 중소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정든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데다 업무 공백에 따른 차질도 예상된다. 중소기업은 현재 53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93%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130여명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통신부품 제조업체 K사 대표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을 하라면 회사 문 닫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1~2년 전부터 충분히 예상된 상황이었는데 무책임한 정부나 정치권이 답답하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휴대폰 부품 제조사인 P사 관계자는 "불황이 워낙 깊다보니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상황에서 비정규직법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노동부는 일단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이들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최근 한 달 평균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수가 8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갑작스럽게 수만명씩 늘어나는 비정규직을 실업급여로 지원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경봉/손성태/이관우/송태형/임기훈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