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존엄사 시행의 주인공이 된 김모 할머니(77)가 인공호흡기를 뗀 지 만 40시간이 넘도록 자발적으로 호흡을 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한 존엄사 시행과 이에 대한 입법화가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할머니는 24일 오후 수축기/이완기 혈압이 110~120/80㎜Hg,호흡은 분당 8~12회(정상 16~20회),맥박은 분당 92회(정상 60~100회),산소포화도 96%(정상 95%)로 생존에 문제없는 생체지표를 보였다. 하루에 세 번씩 호스를 통해 유동식을 공급받고 있으며 혈색도 인공호흡기를 떼기 전과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은 안정적인 상태다. 이에 대해 존엄사를 시행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이날 오후에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향후 2~4주가 고비이고 이를 넘기면 장기간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도 통한 감염여부 촉각

의학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뗀 지 얼마 만에 사망하느냐는 통계 데이터는 없다. 다만 자발호흡이 불가능한 경우 통상 3시간 내에 사망한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하지만 수개월 사는 사례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고 1976년 미국 첫 존엄사 판결 사례인 카렌 퀸란(여 · 당시 21세)처럼 인공호흡기를 뗀 지 10년 가까이 산 경우도 있다.

현재 의료진은 대법원 판결과 가족의 요청에 따라 영양공급 · 수액주사,기도의 노폐물 제거,응급의약품 투여 등의 치료는 지속하되 인공호흡기 재삽입이나 심폐소생술,신장투석 같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럴 경우 환자는 기도를 통한 폐렴 결핵 등의 감염이나 욕창,패혈증,심장마비,뇌졸중이 발생하지 않으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퀸란씨도 폐렴에 걸렸기 때문에 사망했다. 따라서 의료진의 판단대로 향후 2~4주를 넘기면 수개월 또는 수년간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 박창일 연세대 의료원장은 "가래 등으로 인해 기도 쪽에 분비물이 쌓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며 "현재 정기적으로 가래를 제거하고 있으나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이상 완벽히 막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현재는 환자에게 '비상상태'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여전히 식물인간 상태다. 기억력과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의 기능은 거의 소실돼 있다. 그러나 뇌간기능의 일부(호흡조절 및 기침반사 등)가 작동하기 때문에 자발호흡을 할 수 있고 표정을 짓거나 사지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김 할머니의 주치의 박무석 교수는 "할머니가 처음 입원 당시에는 뇌부종에 의한 쇼크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했으나 치료 후 1년4개월여가 지나면서 증상이 호전되고 인공호흡기에 적응하면서 자발호흡이 가능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존엄사 공론화의 걸림돌은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존엄사 허용 판결을 내리면서 1심 재판에서 제시된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김 할머니를 '사망 임박 단계'로 판정했다. 외부 의료기관의 감정자로 선정된 S병원과 A병원의 의료진이 판정한 결과를 그대로 수용한 것.그러나 세브란스 의료진은 줄곧 자체 존엄사 판정 가이드라인의 2단계,즉 '인공호흡이 필요한 식물인간 상태'로 봤다. 박 원장은 "그러기에 앞으로는 존엄사 시행 판단에 주치의의 판단이 가장 중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장(호흡기내과 교수)은 "암환자에게 그 가족들이 암에 걸린 사실까지도 쉬쉬하는 현실에서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의 말기환자에게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지시서를 제출받아 존엄사 시행의 근거로 삼고 이를 법제화까지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며 "점진적으로 의사가 환자나 그 가족에게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물어보는 과정을 공식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할머니의 가족 측은 이날 "할머니가 호흡기 제거 이후 자발호흡을 하는 점으로 봤을 때 병원 측의 호흡기 부착은 분명한 과잉진료였다"며 "위자료를 추가로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은 "지금은 할머니의 건강문제만을 생각해야 할 때이며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가족의 합의아래 적절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