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천국에 가서 아버지도 만나고…행복하게…."

국내 첫 존엄사가 가족들의 흐느낌 속에 23일 오전 10시21분 서울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집행됐다.

병원 측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9층 호흡기내과 중환자실에서 입원 중이던 김 할머니(77)를 존엄사를 위해 준비한 호흡기내과 병동 1508호실로 옮겼다. 21.4㎡ 크기의 병실에서 김 할머니는 코에 유동식 공급호스를 달고 입에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어깨에 조금 못 미치는 머리칼을 뒤로 곱게 빗어넘기고 깨끗한 환자복을 입은 김 할머니는 얇은 이불을 목까지 덮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였다.

수액을 계속 공급받고 있는 탓에 얼굴이 약간 부어 있었지만 평상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는 듯 김 할머니는 간혹 입을 움찔움찔했고 다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딸은 어머니의 발을 계속 주무르며 애통한 심정을 나타냈다.

오전 9시50분 가족 11명,의료진 4명,목사,신현호 변호사,김천수 서부지법 부장판사가 모인 가운데 마지막 임종예배가 시작됐다. 20분가량 진행된 예배가 끝나자 가족들은 김 할머니 주위에서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어버이 은혜'를 나지막이 불렀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흐느낌이 이어졌다.

호흡기를 제거하기 전에 충격을 우려한 듯 여성 가족들은 모두 병실을 나갔다. 아들과 사위,의료진만 남은 상태에서 존엄사가 시도됐다.

오전 10시21분 주치의인 박무석 교수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의 입에 물려 있던 호흡기를 떼어냈다. 10시24분 인공호흡기 전원이 꺼졌다. 가족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호흡기를 제거한 뒤에도 김 할머니는 꼬르륵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오전 10시38분 김 할머니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원 이후 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린 적이 한번도 없었던 터라 지켜보던 의료진이 일순간 충격에 휩싸이는 듯했다.

인공호흡기를 뗀 후 김 할머니는 최대 3시간 이내에 사망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자발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호흡도 안정적이고 혈압 맥박 등도 호흡기를 제거하기 전과 비슷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김 할머니는 평소엔 자다깨다를 반복했는데 오늘은 3시간도 넘게 깨어있는 상태"라며 "대법원에서 호흡기만 제거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에 숨이 멈추지 않는 한 수액과 영양공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족과 의료진의 예상과는 달리 장기간 생명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김 할머니의 사위 심모씨는 "저희 입장은 원래부터 돌아가시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호흡기를 떼고 치료를 받겠다는 것"이라며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존엄사 집행은 2008년 2월 병원에서 폐 조직검사를 받다가 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의 자녀들이 "평소 어머니가 존엄한 죽음을 원했다"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낸 소송에 따라 진행됐으며 대법원은 지난 5월21일 인공호흡기를 떼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