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벽화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고구려 북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한국토지공사 산하 토지박물관(관장 심광주)은 경기 연천군 임진강변 북쪽 연안의 현무암 지대에 있는 고대 성곽 유적 호로고루(사적 제467호)에 대한 3차 발굴 조사 결과 '相鼓(상고)'라는 글자를 새긴 고구려 북을 비롯해 연화문 와당,용마루에 장식했던 착고기와 등의 고구려 유물을 다량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상고'는 토기로 만든 북으로 13점의 파편 상태로 출토됐으며 그 중 하나에 '相鼓'(사진 왼쪽)라는 글자를 뚜렷하게 새겼다. '상고' 파편은 두께 1.7㎝가량에 회흑색을 띠며 표면은 여느 고구려 토기처럼 갈고 문질러 윤이 나도록 했다. 북을 원래대로 복원할 경우 지름이 55㎝가량이며 주둥이 부분에 일정 간격으로 3열의 구멍을 뚫어 가죽을 씌우고 끈을 묶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심 관장은 "이 유물이 더욱 주목되는 것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음악 전문 문헌인 《악학궤범》에도 이런 이름의 악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라며 "이 유물은 발굴로 확인한 최초의 고구려 악기일 뿐만 아니라 명칭까지 확인할 수 있어 한국 음악사에서도 획기적 자료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악학궤범》에는 "<문헌통고>에 상(相)은 그 형상이 비(작은 북)와 같은데 겉은 가죽이고 속에는 겨를 넣고,칠한 판으로 받쳐놓고 악(樂)을 보좌하기 때문"이라며 북 그림과 함께 크기도 적어 놓았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상의 원통 지름은 49㎝로 호로고루에서 출토된 상고와 크기가 비슷하다.

또 《고려사》에는 상고가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악기로 기록돼 있으나 이번 발굴을 통해 이미 고구려 때 있었음이 밝혀져 '상'이라는 악기의 원류가 뒤집힐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고구려 고분인 안악 3호분 벽화(오른쪽)에는 기마 인물이 북을 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전통음악 전문가인 김세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은 "병법에서 북을 치면 진격하고 종을 치면 후퇴하는 것이 일반적인 규율"이라며 "상고가 발견된 지점이 고구려 국경인 점을 감안하면 적이 쳐들어올 때 신호로 치는 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또 연꽃무늬 와당 5점과 건물 용마루 양쪽에 올려놓는 대형 장식기와인 치미 조각,기와를 제작한 수량과 그것을 사용하고 남은 개수를 각각 기록한 '산판(算板)기와' 등도 발견됐다. 심 관장은 "고구려 유적에서 치미가 발견된 사례가 매우 적다"며 "이 같은 건축 자재로 볼 때 호로고루 안에는 화려함과 위용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