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밤 법원 내부 인터넷 통신망.'판사도 때론 말하고 싶다'는 제목이 달린 한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게시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7부 이림 부장판사. 일부 언론을 상대로 '광고불매'에 나섰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 관계자들에게 지난 2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당사자다. 이 글에서 이 부장판사는 자신의 판결을 놓고 언소주와 일부 진보 진영 지식인 등이 '포화'를 퍼부어온 데 대한 심경을 밝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원에서 전례를 찾기 드문 일이었고 게시글도 원고지 50장에 가까운 장문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법관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 사회는 판사 하나 하나가 보수인지 진보인지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10일 모 법대 교수가 한 언론에 기고한 인신공격성 글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기고문에서 언소주 사건이 이 판사에게 임의로 배당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림 판사는 당시 신영철 법원장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결정이 나도록 개입을 하던 시점에 근무했던 판사"라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의 글에서 "(판사의) 범위를 지정해 컴퓨터 배당을 한 것이어서 임의배당이 아니다. 임의배당이 됐다고 해도 서울중앙지법 내규에는 중요 사건의 경우 임의배당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는 대목은 해당 교수의 글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해석됐다.

이 같은 사실이 다음 날 법원 기자실에 알려지자 대부분 기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쌓인 게 많았으면…"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사실 이 부장판사가 당한 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법원을 비롯한 제도권과 권위에 대한 일부 진보진영의 무시 경향은 현 정권 출범 이후로 줄곧 계속돼왔기 때문이다. 광우병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에 담긴 분노, 원주시가 발행하는 시정 홍보지에 실린 현직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주변에 '살인마는 물러가라'고 쓴 현수막 등도 같은 맥락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편가르기가 낳은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언소주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아직도 이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현실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비단 이 판사뿐만이 아닐 것이다.

서보미 사회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