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구기관들은 국제협력관계를 맺고자 할 때 상대방의 연구 수준이 아니라 이름값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는 것이죠.하지만 막상 기관장들이 협정서를 주고받는 이벤트를 펼친 이후에 실질적인 협력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이안 사이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원(29)은 최근 서울 신대방동에 있는 STEPI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의 바이오 분야는 세계 수준의 정보기술(IT),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첨단 연구시설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문화 및 제도적인 요소들이 국제협력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는 학문적인 성과만 가지고 연구자를 평가하는 미국 유럽 등의 문화와는 달리 인간관계를 통해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이몬 연구원은 미국 예일대에서 미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아시아재단과 헨리루스재단의 지원을 받아 STEPI 미래과학기술전략센터에서 10개월간 연구원으로 일해왔다. 다음 달 한국을 떠나는 그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한국 바이오기술의 국제협력 접근법'이라는 논문을 내놓았다.

사이몬 연구원은 국내 연구기관들이 외국과 지나치게 많은 상호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것도 진정한 의미의 국제협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MOU 숫자 등을 기관 평가의 잣대로 활용하고 있는 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 같은 MOU들은 대부분 단발성 컨퍼런스나 공식 만찬으로 끝나며 이후에는 이메일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수준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1개의 MOU를 체결해도 실질적인 공동연구를 통해 수준 높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제협력의 의미가 다시 설정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이몬 연구원은 업무지원 인력의 낮은 영어구사 능력도 활발한 국제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았다. 연구자들이 영어와 관련된 일들을 모두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세밀하고 구체적인 국제협력 방식을 디자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제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많은 해외 연구자들을 데려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국의 연구원이나 대학은 아직 이를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며 "영어를 구사하는 행정인력 확보와 함께 모든 문서를 영어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국제학교나 탁아소 등을 갖춰 해외 연구원들이 살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