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나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패션쇼를 볼 때를 제외하곤 한복을 '트렌드의 중심에서 벗어난 옷'이라 생각해왔다. 단순히 명절이나 예식을 위해 입는 옷 정도랄까. 그런데 올해 들어 그런 '편견'이 사라졌다.

예전에도 영화 '스캔들','황진이'에서 화려한 캐스팅과 더불어 파격적인 한복이 화제가 됐었지만 한복 입은 남자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 '쌍화점'과 신라시대 아름다운 한복을 보여준 '선덕여왕'의 시각적인 즐거움과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선덕여왕'은 고현정표 한복의 은근한 카리스마와 이요원의 대범한 선덕여왕 스타일이 두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어우러지면서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 여인천하,경국지색(傾國之色)의 두 여인,미실과 선덕여왕을 통해 한복의 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한국판 양귀비,미실의 치명적 아름다움

'명모호치(明眸皓齒 · 맑은 눈동자와 흰 이),화용월태(花容月態 ·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세요(細腰 · 가는 허리)' 양귀비는 팔다리가 길고 배에 군살이 없어 날씬하고 유연한 멋을 줬다. 치아가 가지런해 단정하고,속눈썹도 길어 순박해 보였다. 행동거지는 모두 절반씩이었다. 걸음도 반보씩,나비같이 가볍게 천천히 움직였다. 웃을 때도 반만,말도 조용히,속을 다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살피는 화술을 썼다. 음식도 반만 먹었으며 하루 3~4시간 정도 자고 남는 시간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썼다고 한다. 고대 동양 미인의 아이콘인 양귀비의 이런 특징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미실(고현정)에게서 그대로 나타난다. 선덕여왕(이요원)의 화려한 한복이 아직 본격적으로 펼쳐지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미실의 아름다움은 화장,한복과 어우러진 세련된 자태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미실의 우윳빛 피부와 크고 맑은 눈동자,꽃처럼 화려하지만 달처럼 서늘하고 절제된 모습은 은근한 섹시함과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단아한 한복 차림으로 절반의 미소와 차분한 말투로 다가서다가 순간 돌변해 간담까지 서늘한 자태의 킬러로 변신한다. 길고 유연한 몸매와 가는 허리는 칼을 휘두르는 잔인한 모습마저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화용월태의 재현은 미실이 입고 등장하는 한복의 미와 어우러져 마음을 동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평면 재단의 한복은 입어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겹겹이 두르고 끈으로 묶어야 완성되는 한복이 입었을 때 입체적인 선과 리듬이 느껴지며 입은 이의 자태에 따라 그 아름다움도 달라짐을 의미한다.


◆세련된 컬러 매치와 패턴

미실의 크고 둥근 올림머리의 크기는 그 시대 권력을 상징하며 그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 보여준다. 또한 화려한 머리 장식과 길게 떨어지는 귀고리,목걸이를 전부 갖췄으나 조화를 이룬다. 한복에 장식된 꽃과 새 무늬 자수,패턴은 적절하게 배치됐다. 신라시대는 당시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당나라의 대표적 색인 붉은색은 선덕여왕의 한복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신라 여왕임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위엄을 상징하는 검은색,여기에 당시 섬세하고 화려한 수공예 기술을 반영하는 금관으로 선덕여왕의 자태를 완성했다.

반면 미실의 의상은 푸른색과 남색,보라색과 같은 오묘한 한국적 색채가 주를 이루며 차가운 느낌의 은 장식으로 감춰진 야심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기존 사극에서 많이 보였던 원색을 피해 톤 다운된 색을 사용한 점,산만하지 않고 통일감 있는 컬러 매치로 세련되고 권위 있는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를 보여준다.

현재 방영 중인 KBS 드라마 '천추태후'의 경우 다양한 장신구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의 여왕을 표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지나치게 화려한 색채와 자수,장신구를 한번에 매치해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다. SBS의 '왕녀 자명고'는 반대다. 흰색과 작은 무늬로 청아한 왕녀를 표현한 정려원의 한복은 고구려 복식의 특징인 심플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하다 보니 자칫 너무 단순해져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못해 아쉽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컬렉션도 아름답지만 전통 패션의 미도 감동적이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드라마나 영화가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모티프의 작품들을 보여줄 수 있는 패션쇼와 국내 패션지들의 관심도 더욱 필요하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브레인파이 대표 · 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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