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7시 서울대 멀티미디어동 305호 강의실.귀고리를 끼고 멋을 부린 20대 청년과 정장 차림의 직장인,서둘러 저녁밥을 지어놓고 나온 주부들,흰 머리에 돋보기를 걸친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강 삼매에 빠졌다.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강의 내용을 노트에 정성들여 받아적는 수강생부터 녹음기 · 전자사전 등 디지털로 무장한 이들까지 대형 강의실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날 강의는 서울대 사회과학대가 일반 시민을 위해 '아름다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기본교양과 상상력'을 주제로 마련한 교양 강좌의 첫번째 수업.최무영 물리 · 천문학부 교수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장래'를 주제로 수업을 시작하자 강의실을 빼곡히 채운 220여명의 수생들은 잔기침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강의에 빨려들었다.

최 교수는 사진,그래프,유명 회화 작품 등 시청각 자료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이해를 도왔고,수강생들은 "지금 보여주는 지구 사진은 어떻게 찍은 것이냐" "엔트로피의 뜻이 뭐냐" "과학자는 가치 중립적일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유전자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최 교수가 자신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이 유전의 증거입니다. 저랑 닮지 않았나요?"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각계 유력 인사들이 주로 수강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명품 강의' 총 20회를 단돈 10만원에 들을 수 있는 이 교양강좌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수강신청 때부터 폭발적이었다. 지난달 12일 강좌 개설 발표 후 사흘 만에 수강 신청자가 정원(200명)의 두 배를 넘어서 신청 접수를 조기 마감했고,선착순으로 수강생을 정했을 정도였다. 수강생들은 직장인,주부,자영업자,교사,화가,연극배우 등 20대부터 70대까지 다채롭다.

이들은 지난 12일 저녁 열린 입학식에도 180여명이나 참석해 강좌에 대한 기대와 열의를 짐작케 했다. 또 이날 수업 전부터 교재에 줄을 그어가며 예습하는 이들도 많았다.

수강생 박수남씨(51)는 "교양강좌가 처음이라 기대도 되지만 강의를 쫓아가지 못할 것 같아 걱정도 된다"며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 정재성씨(45 · 자영업)는 "세상을 더 깊게 볼 수 있는 교양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또 친구와 함께 온 주부 박혜숙씨(49)는 "평생교육원이나 백화점,구청 등의 시민강좌와 달리 매일 진행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강의라서 매력적"이라며 "이런 강좌를 이처럼 저렴하게 들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강의를 맡은 최 교수는 "배움에 대한 수강생들의 의욕이 대학생보다 더 넘쳤지만 강의 시간이 짧아서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전하지 못했고,토론도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번 교양강좌의 주임교수인 김세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장은 "이번 강좌는 지금까지 일반 시민에게 소홀했던 대학이 사회를 향해 문을 여는 첫 시도"라며 "다음 학기에도 10월쯤 교양강좌를 개설해 더 많은 시민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좌는 다음 달 10일까지 주말을 제외한 주5일 동안 매일 2시간씩 진행된다. 주제는 '생명체와 생명공학'(우희종 교수),'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남인),'한국인의 기질과 한국문화'(전경수),'다문화사회로의 이행과 인종 문제'(김광억),'정보민주주의와 대중지성사회'(이준웅),'동아시아와 인권'(한상진) 등 인문 · 사회 · 자연과학을 망라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