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일찍부터 시장에서 정보비대칭성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일단 화재보험에 가입하고 나면 집주인이 불조심하는 자세는 전과 같지 않다.

집을 나와 한참 가다가 전열기 스위치를 끄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옛날 같으면 당장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도 보험에 가입한 뒤에는 가던 길을 그냥 가기 쉽다. 혹시 화재가 나더라도 가입해둔 보험이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불조심 자세가 이완되더라도 보험회사 측에서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보상을 거부하기도 어렵다. 사고예방 노력 정도를 보험가입자만 알고 있는 상황,즉 정보의 비대칭성은 일반 보험가입자로 하여금 가입 이후 예방 노력을 등한히 하도록 방임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야기한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대리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형태의 모든 거래에서 두루 나타난다.

주주들은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과연 성실한 노력을 들여 경영에 임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에게 근무시간 모두를 업무에 투입하도록 감독하지만 틈틈이 인터넷에 빠지는 것을 적발하기 어렵고 외부 출장길에 사적인 용무를 보는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대리인의 행태를 주인이 모르는 정보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특히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라고 한다.

대리인들은 주인들이 모르고 있는 가운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 주인들에게 돌아간다. 일 저지르는 사람이 그로 인한 피해를 부담하지 않는다면 이 피해가 자기가 얻는 사적 이익보다 훨씬 더 크더라도 일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가령 대리인은 자신의 지위가 안전한 가운데 사적 이익이 1원 더 늘어난다면 그 때문에 주인이 10원 손해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처럼 도덕적 해이는 보험가입자와 대리인이 보험회사와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함으로써 그들 간의 거래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몰아간다.

대리인이 주인 모르게 취한 사적 이익을 1원어치 줄이도록 행동을 바꿀 때 주인의 피해는 10원이나 줄어드는 경우라면,주인은 대리인이 그렇게 할 경우 늘어날 이익 10원에서 2원 정도를 떼어 대리인에게 사례할 용의가 있고,대리인도 주인이 그렇게 한다면 행동을 바꿀 용의가 있다. 그리고 거듭 이렇게 서로 협상하면 결국 효율적 거래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대리인 문제의 어려움은 이러한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선 주인은 대리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자신의 피해액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대리인에게 2원을 더 준다고 하더라도 정보비대칭성은 여전하기 때문에 대리인이 이제는 결코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겠다고 맹세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정보비대칭성을 완전히 해소하는 완벽한 감시(monitoring)만이 대리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리인 문제를 단지 어느 정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