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1시30분 대구 중구청 앞.오전 8시부터 골목골목 다니며 쓰레기를 치운 희망근로자 13명이 점심시간 전 마지막 코스로 대신동 서문시장 뒤편 재개발 지역으로 이동 중이었다. 절반가량은 작업복이 아직 안 나와 사복차림이었다. 대구의 중견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했다는 김준호씨(59)는 "먹고 살기 힘들어 희망근로에 나섰다"며 "업무도 생각보다 힘들지만 할 일이 청소밖에 없어 지금까지 계속 동네 청소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자랑한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출발부터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돈을 쏟아부어 높은 실업률 등 급한 불부터 끄고보자는 정부의 땜질식 행정관행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데 그쳤다는 평가다.

◆'희망근로'는 '청소프로젝트'

정부는 희망근로 종사자들이 백두대간 보호사업 등 정부의 4대 랜드마크사업을 비롯해 시 · 도의 대표사업, 시 · 군 · 구의 특화사업과 숙원사업 등에 집중 배치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딴판이다. 사업의 절반 이상이 환경정비,풀뽑기,쓰레기줍기 등 단순 반복업무다. 경기도의 경우 오는 11월까지 5만7192명에게 3737억원(국비 3015억원,지방비 722억원)을 쏟아붓는다. 지자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강변살자 프로젝트'(하천),'희망 볼랫길 가꾸기사업'(도로) 등 11개 테마도 지정했다. 포장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 보면 속빈강정이다. 예컨대 '군 주변 녹색환경사업'은 군부대의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위병소와 면회실 주변 화단을 꾸미는 일이다. '우리마을 숲 가꾸기''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등의 사업은 기존 공공근로사업과 별반 차이가 없다.

◆농번기 일손 부족만 가중

농촌지역의 경우 희망근로사업은 바쁜 일손을 뺏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서 배밭을 가꾸고 있는 박용하씨(49)는 "오는 20일까지 배 봉지 씌우기를 마쳐야 하는데 일할 사람들이 희망근로에 나가 하루 일당 10만원을 주고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경남 진주시 문삽읍 일대 농가에 일손을 연결해주는 용역센터 관계자는 "수월한 일을 찾아 희망근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때문인지 초보자에게 5만원 이상 주고도 농촌 일 하려는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다.

◆급조된 기획작품에 예고된 결과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애초 기획재정부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행정안전부에서 기존 공공근로나 행정인턴과 겹친다고 난색을 표하며 규모 축소를 제의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밀어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근로와 차별화하려다 보니 등산로에 침목을 까는 등 노동 강도가 센 사업이 많아졌으며 이 때문에 힘이 달려 그만두는 고령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에서 지침을 받아 지자체가 사업을 준비한 기간은 두 달도 채 안 된다. 각종 준비가 미흡하고 허점 투성이인 이유다. 행안부 관계자는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백창현/부산=김태현/광주=최성국/대구=신경원/울산=하인식/이재철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