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진양정씨 문중묘에서

350여년 전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여성 미라가 발견됐다.

이는 지난달 31일 도로 개설 구간에 포함된 경남 하동군 금난면 진정리 '점골' 소재 진양정씨 문중묘역 중 조선중기 때 사람인 정희현(鄭希玄.1601-1650)의 두번째 부인 온양정씨(溫陽鄭氏.?-?) 묘를 이장하다가 발견한 미라를 7일 서울대병원 부검실에서 조사하던 중 밝혀졌다.

조사 결과 시신을 겹겹이 감싼 옷가지인 염습의(殮襲衣) 안에서는 법의학적으로는 '비누화' 상태의 미라가 된 이 여성 뿐만 아니라 그 아래쪽에서 두개골과 정강이뼈를 비롯한 어린아이 뼈 조각이 발견됐다.

조사에 참여한 서울대병원 법의학연구소 신동훈 교수와 단국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김명주 교수는 "자세한 과학적 분석이 뒤따라야겠지만 온양정씨 할머니는 분만 중에 사망했음이 거의 분명하며, 그 상태로 아이와 함께 매장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염습의 중 발치 쪽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용 바지 1벌 또한 분망 중 사망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 교수는 "머리카락에 흰머리가 발견되지 않고, 이가 마모된 상태로 보아 온양정씨 할머니는 20-30대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온양정씨는 족보상 생몰 연대가 확실치 않지만 남편인 정희현이 1650년에 사망했고, 출산 중에 사망했음을 고려하면 남편보다 일찍 죽은 것으로 보인다.

출산 중 사망한 조선시대 여성 미라는 지난 2002년 고려대박물관이 조사한 경기 파주시 교하읍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의 '모자(母子) 미라'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발견이다.

이번 하동 지방 온양정씨 미라는 정희현 9대손인 정재승(鄭在承.51)씨 주도로 현재의 묘소에서 8-10㎞ 정도 떨어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진양정씨 선영 묘역으로 이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곽(灰槨)을 해체하면서 출현한 목관 안에서 발견됐다.

정씨를 통해 이런 사실을 신고받은 안동대박물관(관장 임세권)은 현장에 출동해 미라를 직접 수습해 서울대 법의학연구소로 이송했다.

이날 조사는 염습의(殮襲衣)를 하나하나 해체하는 과정인 해포(解布)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됐으며, 신동훈ㆍ김명주 교수 외에 발굴단장인 임세권 안동대박물관장과 복식사 전공자들인 이은주 안동대 교수와 송미경 서울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5시간 정도 계속된 해포 전 과정을 지켜본 정희현의 9대손 정재철(鄭在喆.70)씨는 "할머니(온양정씨)를 그대로 다시 이장시켜 드리는 게 후손의 도리겠지만, 문중 사람들과 논의한 결과 의료진이나 복식사 전문가들에게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라는 각종 염습의 46점에 쌓여 있었으며, 신장은 155㎝ 정도였다.

두 발에는 한지로 만든 짚신인 지혜(紙鞋)를 신고 있었으며, 머리는 가발의 일종인 '가체'를 둘렀으나 모자는 쓰지 않았다.

신동훈 교수는 "신장 155㎝는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 미라의 평균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와 같은 미라 연구는 조선시대 상장의례에 대한 정보를 축적함과 동시에 무엇보다 조선시대 식생활이나 전염병, 기생충 등에 대한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면서 "이번 하동 할머니 또한 광범위한 학제간 연구를 진행하고 그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